수해 - 희망 씨앗 뿌리는 농부
수해 - 희망 씨앗 뿌리는 농부
  • 박재명<충북도 동물보호팀장>
  • 승인 2017.07.26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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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 박재명<충북도 동물보호팀장>

비가와도 너무 많이 왔다. 휴일 새벽,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고 있으므로 빨리 차를 빼라고 다급히 방송했다. 13층 아파트에 살다 보니 간밤에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가늠되지 않은 채, 이게 무슨 난린가 싶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던 주말이었다.

이어서 매스컴을 통해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기존 배수로만으로는 빗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좁아진 도랑과 지천에는 나무 같은 장애물이 걸리면서 물길을 막았다. 급기야 물이 제방으로 넘으며 둑이 터지고 절개지 사면에서 흘러내린 흙더미가 도로를 덮쳤다.

물을 잔뜩 먹은 산비탈의 산사태는 마을을 휩쓸었다. 논밭 한가운데로 물길이 나기도 하고, 토사가 밀려온 곳은 전지도 산비탈로 변했다, 길바닥은 빗물이 스며들 틈도 없이 땅 위에 고였다. 곳곳에서 지하실은 물이 차고, 차량이 침수되고, 가재도구가 떠다녔다. 어디가 도로인지 논밭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우리의 삶터를 초토화했다. 수마가 남긴 상처는 어느 하나 성한 곳 없이 크고 깊었다.

비 온 후,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너도나도 휴일 복구 작업에 지원을 나섰다. 우리 부서는 병천천 옆에 있는 축산 농가를 찾았다. 그날 새벽, 상류에서 밀어닥친 물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제방이 터졌다고 했다. 터진 제방으로 들어온 물이 농장 안으로 서서 달려왔다고 했다.

물은 순식간에 축사 기둥 높이의 반을 채웠으며, 옥수수의 어깨까지 물이 찼다고 했다. 자식같이 키우던 소는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고개를 하늘로 쳐들어 겨우 코 호흡으로 살아났지만, 어린 송아지들은 깊은 수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익사했다고 한다. 경황없는 가운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료 한 포라도 더 건지려고 했단다. 그러던 중에 물에 둥둥 떠내려가던 막내아들을 구사일생으로 구한 것은 천만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었다. 병천천을 바라보니 물살이 할퀸 자리가 용트림한 듯, 구불구불 물길이 그날의 참담함을 대신 얘기하고 있었다.

피해조사 가는 길에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온몸이 흙 범벅을 뒤집어쓴 채 오물을 정리하고, 논밭을 정리하고,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특히 전국에서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와 준 자원봉사자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어려울 때 하나 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또 한 번 목격하면서 감사를 드렸다.

피해를 당하신 분들은 한 마디 격려의 말에 용기를 얻고, 팔을 걷어붙인 손길에서 희망을 품는다고 한결같이 말씀해 주셨다. 보상이라고 할 것도 없이 적은 재난 복구비로 마음의 치유까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며 일그러졌던 그들의 얼굴에서 잠시나마 고단함을 내려놓았다.

갑작스런 수해로 지금까지 잃은 것은 재산이다. 그러나 반드시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 아닐까 싶다. 재산은 보상을 받고 부서진 것은 복구하면 되지만 혹시나 마음의 상처와 재기의 의지를 꺾어 버리면 모든 것을 잃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악몽같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정신적 고통까지 겪는 분도 있었으니 적정한 재난 심리치료도 꼭 필요해 보였다.

실의에 빠진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봉사는 바로 재해지역 주민에게 주는 희망의 눈짓이다. 오늘도 수많은 자원봉사자를 보자니, 그들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잠시나마 선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이 있기에 용기와 희망의 꽃과 열매를 미리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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