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64>
궁보무사 <26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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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내가 지금 자네랑 급히 상의좀 할게 있네"
31.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흥! 진작 그럴 것이지. 괜히 길가는 사람한테 시비를 걸다니. 좌우간 너희들 오늘 운이 참 좋은 줄로 알아라. 내가 시방 너무 바빠서 그렇지, 평소 내 성질 같았더라면 죽기 살기로 싸워서 네놈들 가운데 두서너 놈 정도는 나와 똑같이 황천길을 가고 말았을 것이다. 으흠흠."

복대는 헛기침을 몇 번 해대며 꺼냈던 지게작대기를 마차 옆에 다시 끼우고는 천천히 말을 몰아 마차를 끌고 나갔다.

복대의 이런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한벌 성주의 얼굴 위에 흐뭇한 미소가 살포시 떠올랐다.

아마도 사냥을 나왔다가 큼직한 사냥감이 아닌 충실한 한벌성 백성 하나를 뜻밖에 찾아내게 되어 그로서는 기분이 몹시도 좋은 모양이었다.

성주는 그가 조금 더 멀리 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의 측근 부하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방금 떠난 저자의 뒤를 몰래 따라가 어느 누구에게 마차 위에 실려 있는 저 짐을 전해주는가 살펴보아라. 저 짐을 건네받는 자는 즉시 잡아다가 엄히 조사해 보고, 저 키가 큰 자는 끝까지 뒤쫓아가서 어디에 살며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알아가지고 내게 보고하라."

한편, 동굴 속에 숨겨놓았던 가경 처녀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어 싣고 떠나는 마차 행렬 맨 뒤를 말 타고 느릿느릿 따라가던 내덕에게 수동이 급히 달려와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덕 어른! 아무래도 사천 어른을 빨리 구워삶아야만 하겠습니다요. 웬일인지 사천 어른께서 맨 앞 마차에 실려 있는 짐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확인해 보며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중입니다요."

"뭐라고 저기 보이는 산 중턱에 물이 나오는 곳으로 가서 나와 함께 점검해보기로 했는데"

내덕이 몹시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천 어른은 혹시라도 그곳에 가는 도중 짐이 딴데로 몰래 새나가지 않나 염려하는 눈치 같습니다요."

"허 참! 저런 깐깐한 사람하고는, 피차 믿고서 하는 일인데 저렇게 사람을 의심해서야 어디."

내덕은 내심 불쾌하고 또 초조한 듯 빈 입맛을 계속 쩝쩝거렸다.

"맨 아래에 있는 마차까지 조사해 내려오기 전에 내덕님께서 뭔가 대책을 마련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요. 원래 뇌물로는 전혀 통하지가 않는 분이오니."

수동이 몹시 초조한 듯 내덕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알았네. 내가 가서 적당히 말로 구워삶아놓지. 수동 자네가 이곳을 대신 맡고 있게나. 참! 그런데. 자네 조카들은 착오 없이 그 일을 잘하고 있겠지"

"아 물론입지요. 제 조카라서 제가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두 놈 다 심지가 바로 곧고 착해서 자기 물건이 아니면 길가에 막 굴러다니는 황금덩어리도 아예 모르는체 하는 아이들입니다요."

"알았네. 음."

내덕은 말을 마치자 급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내달렸다.

정말로 아닌 게 아니라 사천은 맨 앞에 있는 마차부터 실려 있는 짐들을 차례차례 검사해 내려오고 있었다.

"여보게! 사천! 내가 지금 자네랑 급히 상의좀 할 게 있네."

내덕이 사천 앞으로 숨 가쁘게 다가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나와 상의를"

"응. 이건 사사로운 얘기이긴 하다만, 워낙 비밀을 요하는 것이니 우리 조용한 데로 가서 천천히 얘기 나누기로 함세."

"이따가 일을 다 마치고나서 하면 안 될까"

"어허! 세월이 좀을 먹고 가만히 놔두면 하고 있는 일이 생선처럼 썩어 들어가기라도 하는가 자, 자 별것이 아니라면 별것이 아닐 수도 있고, 대단치 않은 거라면 대단치 않을 수도 있다만 기왕에 내가 해주는 얘기이니 자네가 성의를 가지고 귀담아 들어주게나."

내덕은 사천을 억지로 잡아끌어 적당한 곳으로 데리고 간 후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일세, 나 요즘 큰 고민을 하고 있다네. 우리 한벌성에 있는 젊고 예쁘고 싱싱하게 잘 빠진 계집 하나가 요즘 들어 내게 자꾸 음흉스러운 추파를 노골적으로 보내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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