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3.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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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삼시 세끼 밥을 먹으면 `삼식이'요, `겁 없는 남편'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 밥을 위해 존재한다고나 할까. 밥 앞에 평등 없고 밥 앞에 체면 없다. 밥의 무게에 따라 추가 기울고 밥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쏠린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을 들을 때면 그래도 세상을 잘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흘러가는 말일지라도 그럭저럭 무탈하게 그와 어울려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힘들어할 때마다 손잡아 준 적이 있고, 눈물 빼는 순간에 손수건이라도 꺼내주는 아량을 베풀었기에 다가오는 것이다.“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나 “나중에 소주 한잔하자”라는 말은 거의 같은 분위기에 속하는 인사말일 것이다. 아무튼 밥 먹자는 말은 그 말이 겉치레일지라도 기분을 좋게 한다.

인연이나 사랑도 밥으로부터 출발한다. 근본은 사랑이지만 밥에 의해 관계가 맺어지고 밥을 위해 손가락을 건다. 밥이 해결되지 않으면 남과 여의 관계는 삐걱거리게 마련이다. 동행한다 해도 그 길이 순탄하지 않거니와 불꽃 같은 열정도 풍선에 바람 빠지듯 금세 쪼그라든다. 그 관계가 지속되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밥을 지닌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얼굴이 미운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직장이 없으면 용서할 수 없다고들 한다. 인간 세상에서는 밥그릇의 크기에 따라 울고 웃는 부침을 계속한다.

돈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건 누구든 부인할 수 없다. 세상을 자기편으로 만들게 하는 힘도 돈이다. 돈 든 자리에 사람 들고 사람 든 자리에 돈 든다. 부의 능력에 따라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떠나간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마 이파리 내밀고 꽃을 피우다 낙엽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생명 말고는 없다고나 할까. 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남녀평등을 넘어 여자 상위 시대로 움직여 가고 있다.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나 가전제품도 여자의 마음을 녹여야 매출이 는다. 생활공간인 집도 풍수지리상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교통여건과 학군까지 좋으면 일품의 자격을 얻지만, 밥을 지배하는 여자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명품에서 멀어진다.

마음속에 내재한 물음의 표시를 욕망이라는 단어로 표한다면, 욕망의 원점은 밥이다. 밥은 돈과 같이 욕망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돈만큼 속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돈만큼 치사한 생각을 들지 않게 한다. 돈이 형이하학적이라면 밥은 형이상학적이다. 돈은 절박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밥은 그보다는 너그러워 보인다. 포용력과 흡수력이 있어 사람들을 그 주변으로 둘러앉게 한다.

밥, 그 단어만 떠올려도 힘이 솟는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밥, 1음절의 단어지만 힘이 느껴진다. 여러 단어가 모여 이룬 문장처럼 조화를 부리고 감동을 준다. 문장에 갖은 형용사나 부사를 붙여 감정이나 상상을 자극하지만 밥은 그 어떤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밥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

하루하루가 고단한 것은 내가 감수해야 할 시간이고, 하루하루가 변화없이 흘러가는 것은 내가 넘어야 할 산이지만, 그보다 더한 과제는 당장 눈앞에 놓인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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