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과가 사라지는데 왜 담담한가
국문학과가 사라지는데 왜 담담한가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03.14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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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대학가에서 국어국문학과(이하 국문과)가 설 자리를 잃은 지는 오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래도 폐과 소식이 들리면 씁쓸하다.

청주대가 지난 10일 학사구조개편안을 확정하면서 국어국문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통폐합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한국문화전공으로 변경했다. 변경되는 전공이름도 낯설다. 미디어도 배우고 커뮤니케이션, 한국문화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겠지만 국문학이라는 뿌리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취업률 저조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대학가에서 폐과 1순위였던 국문과였지만 이젠 폐과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도 없는 듯싶다.

서원대는 1988년 개설한 국문과를 2012년 한국어문학과로 변경했다.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에는 교육부가 추진한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일명 프라임) 사업을 신청하면서 한국어문학과의 모집 중단을 결정했고, 그나마 뽑았던 15명 정원도 2017학년도부터 선발하지 않았다.

대전 배재대가 2013년 국문과와 한국어과를 통폐합해 한국어문학과로 변경한다고 했을 때 충격이 컸다. 다른 대학과 달리 배재대에 개설된 국문과는 의미가 다르다.

배재대의 전신인 배재학당 출신으로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있고, 시인 김소월 역시 배재대 전신인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배재대는 단과대학 이름을 주시경대학, 김소월대학으로 붙인 적도 있다. 그러나 그 뿌리를 계승하고 싶었던 노력에도 불구 대학은 대학구조개혁 평가라는 현실 앞에 국문과를 통폐합했다.

충남 건양대학교도 국문과를 없앤 지 오래고 그나마 청주대와 충북대가 명맥을 이어왔는데 이젠 청주대마저 대학의 생존을 위해 국문과의 통폐합을 결정짓고 말았다.

안도현 시인이 국문과가 사라지는 현실을 두고 SNS를 통해 “취업과 거리가 멀다고 국문과를 `굶는과'라고 자조하던 시절에도 학과 폐지는 꿈도 꾸지 않았는데 대학평가를 내세워 예산을 차별 지급하는 교육부의 대학 줄세우기는 미친 짓을 넘어 대학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쓴소리를 내뱉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시골의 작은 도서관에서도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있다. 전국 지자체마다 앞다퉈 인문학 예산을 배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나 교육당국은 국문과 폐과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올해초 프랑스 컨템포러리 브랜드 `쟈딕 앤 볼테르'가 봄·여름 상품으로 한글이 들어간 반팔 티셔츠 한 장을 출시했다. 온라인몰에서는 정가 150파운드(약 20만원대)에 팔다가 세일가 75파운드(약 10만원대)에 판매했는데 매진됐다.

여름용 반팔 티셔츠가 봄이 오기도 전에 완판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재밌는 사실은 티셔츠 앞면에 영어로 `ZADIG & VOLTAIRE SEOUL(쟈딕 앤 볼테르 서울)'이라는 글씨가 크게 박혀 있고, 그 밑에 한글로`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82번지'라고 쓰여 있다. 한글로 쓰여진 내용은 다름아닌 쟈딕 앤 볼테르 브랜드의 서울 청담동 본점 매장 주소였다. 한국에선 판매하지 않았던 이 제품은 프랑스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판매됐는데 유럽인들에게는 소장하고 싶은 명품인 셈이다.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글 속에 얼이 있고 정신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진정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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