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에 내몰린 사회
실적에 내몰린 사회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03.07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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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17살 한 여고생이 실적에 내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주의 한 통신회사 콜센터 현장 실습 상담원으로 근무한 A양은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A양의 아버지가 딸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은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였다.

특성화고 애완동물 관련과에 진학해 부모 고생을 덜어주겠다는 기특한 딸은 지난해 3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실습생으로 콜센터에서 근무했다. 그녀는 기초 교육을 받은 뒤 휴대전화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을 담당하는 SAVE 부서에 배치됐다. 이 부서는 서비스 해지를 요청하는 소비자들의 폭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해지 방어 부서라고 불리는 베테랑 직원조차 꺼렸다. A양이 근무한 콜센터에서는 3년 전에도 한 여직원이`부당한 노동 착취 및 수당 미지급이 어마어마하다'는 내용의 고발성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했다.

10대인 A양은 막무가내 고객의 폭언에 시달릴 때면 몇 시간씩 울면서 고통을 감내했다.

A양의 어머니는 “딸애가 서너 번 `엄마 나 회사 그만두면 안 돼'라고 묻기에 어려워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 게 한이 된다”며 “그때 말했던 게 정말 힘들어서였는데 새겨듣지 않았다”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꿈꾸기에도 부족한 17살 여고생에게 우리 사회의 민 낯을 보인 것은 아닐까 싶다.

A양이 근무한 콜센터는 다른 통신회사로 전환하려는 고객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붙잡아야 실적을 낸다. 그녀가 다녔던 특성화고를 포함해 전국 모든 특성화고는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는 취업률로 학교 순위가 매겨진다.

교육부는 학교별 취업률로 시·도별 평가를 한다. 애완동물 관련 과를 다녔던 그녀가 전공과 무관한 곳에서 현장실습을 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다. 이런 사정으로 특성화고 업무를 맡은 도교육청 담당자는 단위 학교별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일일이 학교를 찾아다니며 취업 부장을 만나고 취업률 제고에 힘써 달라며 읍소하러 다녀야 한다.

대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교육부가 시행하는 각종 국고 사업을 따내기 위해 대학은 입학한 학생들의 꿈을 무시한 채 평가를 통해 학과별 통폐합을 단행하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연구실에 있어야 할 교수들을 길거리로 내몰기도 한다. 요즘은 국립대학 혁신사업(포인트 사업) 선정을 위해 대학들이 문어발식 연합 구축에 뛰어들고 있다. 교육부가 설립 유형에 교육자원 공유를 내세워 대학 간 연합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서 추진한 연합 구축은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평가를 의식해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진행한 협약은 평가 결과에 따라 앙금이 남을 수도 있다.

19년간 축사 노예처럼 일하며 만득이로 불리던 고영수씨가 지난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48세인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했을 때 해당 학교 학부모들은 그의 늦은 입학을 축하하기보다 자신의 아이와 같은 반에서 진짜 공부하느냐는 것이었다. 교육전문가들이 장애인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은 아이의 경우 성장했을 때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생활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조언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내 아이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17세 소녀를 향해 누군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넸다면, 등이라도 두드려줬다면 그녀는 꽃피는 봄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실적과 성공, 출세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누구를 배려하는 것 자체가 오지랖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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