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듯
꽃이 피듯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3.07 1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쌍둥이 손녀가 진통 끝에 한글을 깨쳤다. 삶의 길잡이가 되어 줄 끈 하나를 만들었다. 손이 닿는 곳마다 글자를 그린다. 어미는 낙서 현장을 지우다가 포기했는데 아이의 머릿속에 박혀버린 글자의 개념처럼 지워지지 않는 낙서도 있다.

주로 제 이름과 `엄마, 아빠 사랑해요. 할머니 오래오래 사새요.'그런 문장들이다. 괴발개발 그려놓고 제 딴에는 흐뭇하다. “나 이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라는 고백 같아서 대견스럽다. 두 녀석은 그림 같은 문자로 소통의 구역에 들어섰다.

서로 견제하고 화합하면서 사회를 배운다. 한 녀석은 당차고 한 녀석은 부드럽고 정이 많다. 당찬 녀석은 제 일을 해내는 모습이 다부지고 정이 많은 녀석은 두루 관계에 원만하다. 사회구성에 꼭 필요한 좋은 요소를 나누어 가졌다. 상호보완하면서 살라는 반쪽의 운명처럼 느껴진다. 필경 사회에 나가면 제 몫을 거뜬히 해낼 것이다. 문득 당파 싸움만 하다가 끝나는 정치판 인생들은 상호보완의 의미를 모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던 날 박수소리에 활개를 치며 좋아했었다. 처음 다니게 된 어린이집에서 한 달을 두고 울더니 어느 참부터는 즐거워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내 글에도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제 길을 나아가고 있다.

나는 인화人花가 피는 과정을 행복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느 과정에서는 숨이 차고 바람이 불지 않을까 걱정도 하지만 그렇게 핀 꽃이라야 아름답다.

겨우내 실내에 끼고 있던 대왕선인장을 봄볕에 내놓았더니 전신 화상을 입고 말았다. 봄 햇살이 독이 될 줄 몰랐다. 몇 해가 가도 흉터가 남아있어 볼 때마다 인생 공부를 한다.

저출산으로 아이가 귀하다. 세상에 없는 귀한 자식이다. 인생지도를 꿰고 있는 부모의 눈으로 이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품엣 자식으로 끼고 인생의 셈법을 가르치다가 덜컥 사회에 나서면 어른아이가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분별한 사랑은 자식을 세상에서 겉돌게 하는 독소가 될 수도 있다. 나도 자식을 키울 때 분별심이 없었다. 그때를 거울삼아 바쁜 어미를 대신해 손녀를 돌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3월, 두 녀석이 입학을 했다. 첫 울음을 울 때부터 돌보기를 7년째, 가슴이 벅차다. 이틀 새 애먼 살을 먹어 유예신청을 할까 하고 식구들이 갈등에 빠졌었다. 보수파인 양가 어른들은 단점을, 진보파인 아비 어미는 장점을 내세웠다. 결국 진보의 장점을 따르고 보수파가 걱정하는 점은 노력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믿는 대로 될 것이다.

꽃이 피듯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모체에서 여물어진 꽃씨가 땅에 떨어지는 일은 두려움이다. 새들의 부리를 조심해야 하고, 지기를 적당히 받고, 물기를 조절하며 조곤조곤 숙성이 되어야 한다. 여타 조건이 충족되면 땅을 헤집고 나오기 위해서 100%의 의지를 내야 한다. 굳은 의지는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설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애써 싹을 틔워도 태풍의 계절엔 비바람이 일고 걸림돌은 곳곳에 놓여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사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우랴. 절치부심으로 핀 꽃을 바라보며 아이가 그렇게 제 꽃을 피우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