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55>
궁보무사 <25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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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비밀이라는건 없다지 않아요"
21.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한편, 밤중 내내 질퍽하게 일을 몇 번 치른 바 있는 외남 무사와 성주의 애첩은 아침 늦게까지 곤한 잠을 자고 있다가 별안간 방문이 흔들리며 밖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두 눈을 번쩍 떴다.

"아침 음식을 새로 차려 왔는데. 어제 저녁 음식상을 깨끗이 치우고 다시 올려드릴까요"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어느 하녀의 외침에 외남 무사와 성주 애첩은 당황한 듯 얼굴을 잠시 서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냉정을 찾은 성주 애첩은 침착한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아침 식사는 조금 이따가 할 터이니 너희들은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가 부르거든 곧 들여오도록 하라."

애첩의 말에 하녀들은 공손히 물러갔다.

외남 무사는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자기 옷가지들을 주워가지고 아래 바지부터 급하게 입기 시작했다.

"참내. 하필이면 내가 어젯밤 이상한 꿈을 꿔가지고. 글쎄 내가 오근장 성주님께 사랑받는 꿈을 꿨지 뭐예요. 꿈속에서 저는 진짜 성주님인 줄로만 알고 무조건 하자는 대로 응했었으니."

애첩은 이렇게 말하고는 무척이나 후회스럽고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외남 무사를 힐끔 쳐다보았다.

"허허.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요. 나도 어젯밤 꿈에서 하필이면 나랑 결혼 약속을 한 여자 친구를 만났었으니. 내 솔직히 당신인 줄 알았더라면 손가락 하나조차도 까딱하지 않았을 거요."

외남 무사도 이렇게 투덜거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해댔다.

"그나저나 앞으로 이걸 어떻게 한다지요"

"뭐를요"

"방서라는 자를 몰래 감시하러 온 당신이 엉뚱하게 나랑 눈이 맞아 놀아났다는 소리가 성주님 귀에 들어갈 수도 있을 터인데. 그렇게 되면 불같은 성미를 가진 성주님께서 가만히 계실리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젯밤 본의 아니게 벌어진 일에 대해선 아예 모른 척 비밀로 해둡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비밀이라는 건 없다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할 셈이요 당신이랑 나랑 찐하게 재미를 봤었다고 성주님께 사실 그대로 말씀을 드려가지고 우리 두 사람의 모가지가 뎅강 떨어져 나가야 좋겠소"

벗어 놓은 옷을 다 입고 머리 위에 투구를 걸쳐 쓴 외남 무사가 애첩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머머! 우리 두 사람 중에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들이랑 방서라는 작자가 혹시 주둥이를 나불거리지 않을까 해서이지."

성주 애첩이 두 눈을 곱게 흘기며 다시 말했다.

"으음.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요. 이곳은 우리 외평 형님이 책임지고 있으니 여기 있는 하녀 하인들은 모두 외평 형님의 수하들이나 마찬가지요."

"그러나 방서라는 자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보장은 없지 않아요"

"하하 그것 역시 염려할 바가 못 되오. 우리 형제가 성주님을 호위해 드리고 있는데, 어찌 감히 성주님 앞에서 그 더러운 주둥아리를 함부로 나불거릴 수 있겠소 당신만 입조심하면 아무 탈 없을 거요."

"어맛!"

갑자기 애첩의 예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조그만 두 입술이 바들바들 떨려졌다.

"아니, 왜 그러오 혹시 방서가"

외남 무사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다가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어느 틈에 방 안으로 들어온 방서가 그의 안면을 주먹으로 내리쳐 버린 것이었다.

애첩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동안 방서는 기절해 버린 외남 무사를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방구석으로 끌어다 놓은 후 이렇게 말했다.

"보아하니 방 밖에서는 아침 음식상을 들여올 준비를 다 마쳐놓은 것 같소이다. 어제 저녁 음식상을 말끔히 치우게 하고 아침 음식상을 들여오게 하시오."

그러자 애첩은 부들부들 떨면서 방문을 열고는 하녀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쳐 음식상을 들여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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