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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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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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장 규 <충주고 교사>

새해 벽두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의 말을 가지고 말이 많다. 그 말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그들의 마음을 헤집는 말들이다. '말이 말 같아야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 무슨 말이 말이 그렇다는 말이냐'고 따지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참 말도 많은 세상이고 말 같지 않은 말들이 홍수처럼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다.

말이 한 사람의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자 하는 수단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말의 순기능이다. 그러면서도 말은 동시에 그 말을 함으로써 오해를 낳기도 한다. 그것은 말의 역기능이다.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말이 있는가 하면, 화를 불러들이는 말도 있다. 두 얼굴을 가진 말, 아니 어쩌면 천의 얼굴을 가진 말들로 우리 삶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말을 정확하게 사용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가령,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대명사인 '나'에 보조사 '-는'이 붙어서 이루어진 주어 '나는'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보조사 '-은-는'은 '단독'임을 더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과 그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다른 사람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의 의미다.

이와 같은 방법을 '나는 평범하게 살겠다'는 말에 적용해 보면 다소 엉뚱한 말이 될 수도 있다. 즉,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범할지라도) 나는 평범하게 살겠다'의 의미를 지닐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범하고, 내가 평범하면' 결국 '다른 사람들'은 평범한 것이 되고, '나'는 비범한 것이 되어서, 오히려 반대의 의미를 나타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함에 있어 좀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는 한 이유이다.

매로 맞은 것은 멍이 풀리면 마음도 풀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말로 맞은 것은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런 말들이 가슴 속에서 오래 묵으면 때론 종양이 되고, 때론 한이 되어서 특정한 대상을 만나면 눈빛에 서슬 퍼렇고 번뜩이는 비수가 비치기도 한다. 물론, 그런 말들은 때론 가슴 속에서 오래 곰삭아 발효가 되면 사랑과 용서의 향기가 나고 그 마음이 노래가 되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일도 있다. 진주조개의 상처가 진주를 만드는 일과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훗날 그것이 '복수'의 번뜩이는 비수로 눈에 어리든, 아니면 진주처럼 환한 보석으로 남든, 처음에는 그 말이 '상처'가 되었음은 동일하다.

남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모두 폭력이다.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말이 '폭력'이 될 수도 있는가 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폭력이 되는 말을 들은 사람은, 작게는 쓸쓸하고 슬픈 심정을 술로 달래기도 할 것이고, 때론 자기의 목숨을 깎아지른 벼랑에 던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작은 폭력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 큰 폭력까지 수도 없는 말의 폭력을 일삼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새해가 되고 벌써 열흘이 지난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면 어느새 새해도 손때가 묻기 시작했다. 그 손때가 말로부터 시작되어 곰팡이처럼 번지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선거도 있는 해이다. 그 때를 기다려 무수한 말들이 화살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향해 날아다닐 것이다. 까닭도 모르고 그 날아다니는 화살에 맞아 피 흘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올해는 제발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은 그만 두고, 남들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말들로 채워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과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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