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굴레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7.02.2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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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등에 감긴 루프를 벗기고 싶다. 인제 그만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도 좋으리라. 인간을 위하여 수천 년 희생과 봉사를 다한 동물이 아닌가.

앙코르와트 왕궁이나 바욘 사원, 따프롬 사원 건축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돌무더기 석조 건축물이다. 앙코르와트 고대유적은 코끼리가 없었다면 상상도 못 했으리라. 고대 운반 및 교통수단이었던 돌 코끼리가 꼼짝 않고 서 있다. 그 형상이 안쓰러워 검버섯 핀 몸을 눈으로 더듬다 등허리를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는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고자 마구 부렸던 코끼리이다. 앙코르와트의 회랑 긴 벽을 따라 조각한 고대 문화와 역사 속에도, 전장에서 돌아와 머물던 코끼리 테라스 벽 조각에도 코끼리는 빠지지 않는다. 코끼리의 노고를 알리고자 사원 한 귀퉁이에 코끼리 상을 조각해놓은 것 같다. 마치 루프를 친친 감은 코끼리 형상이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아니 인간은 마치 코끼리의 종족을 멸해야만 끝장을 볼 심산인 것처럼 느껴져 온몸에 전율이 인다.

인간도 `삶'이란 굴레를 쓰고 있다. 죽지 않는 이상은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가야만 한다. 가난의 삶을 벗어나고자 평생을 애쓰던 사람도, 정해진 운명을 개척하였다는 사람도 어찌 보면 굴레의 한 속 안이다. 인간은 `굴레'란 범주 안에서 크든 작든 `지지고 볶고, 발버둥을 치고' 살아가는 형상이 아닌가 싶다. 만약 신이 있어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욕망을 채우고자 펼치는 행위들이 얼마나 가소로울까.

시선은 다시 고대 건축물과 조형물에 닿는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못 할 규모의 사원도 놀랍지만, 수천 년 전 고대유적이라는 것에 더욱 믿기지 않는다. 대부분 사원은 신에게 바치고자 지은 건축물이란다. 신들이 머무는 공간이라 생각하니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한 귀퉁이에 세워진 코끼리마저 하찮게 넘겨버릴 수 없는 심오한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 듯싶다. 그래서 이곳을 신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것도 여기에 있나 보다.

코끼리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사원을 찾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코끼리의 노고에 고개를 숙여야 할 듯싶다. 앙코르와트는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지정되었던 유적이다. 과거 역사와 문화가 화려한 데 비하여 후인의 생활상은 너무나 곤란하다.

거리에는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안고 `일 달러'만 달라고 애걸하는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다.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신세 한탄하며 구시렁거리던 내 모습과 겹쳐진다. 나의 굴레와는 다른 삶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앙코르와트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찾은 여행지이다. 루프를 친친 감은 코끼리와 스러져가는 사원의 흔적을 바라보며, 굴레란 내가 만든 허상의 공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사람들이 원하는 돈과 명예, 권력 등 무언가 얻고자 지키고자 애쓰는 것들 또한 `굴레'의 속안이 아닐까 싶다.

발버둥 칠수록 또 다른 굴레에 갇힌다는 걸 모르고, 인간은 어리석게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무작정 달려온 이방인을 바라보는 탑 보살만이 굴레의 해답을 알고 있는 듯 해탈의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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