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날의 단상
개학날의 단상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2.2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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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방학이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고 꾸물대던 재미가 쏠쏠했지요. 그러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불호령을 듣게 됩니다.

“빨리 일어나라. 개학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어디 돈 쓸 곳이 없어 너희들 학비 대주는 줄 아느냐? 학교 그만 다니고 나와 함께 일이나 하자” 하시며 저희를 깨우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울리는 듯합니다.

그때 저는 개학 준비가 개학날 가방 메고 학교 가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학비의 무게감을 강조하시던 아버지는 비단 학비를 챙기는 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새 학기에는 우리에게 신발이며 옷이며 심지어는 학용품까지 다 사주셔야 했으니 농사꾼이셨던 아버지 어깨에 짊어진 7남매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우셨을지 지금에야 상상이 됩니다.

지난 학기 성적표와 더불어 개학일이 언제라는 통지서를 받고 좋아하던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시던 아버지! 아버지의 그 눈빛이 생각나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드는 생각의 일단은 개학이란 단어입니다.

개학일은 방학을 마치고 학기의 시작을 알려주는 날입니다. 새로운 학기의 시작은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가슴 설레던 날이기도 합니다. 비록 지난 학기의 성적이 조금 안 좋았어도 다시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개학해서 우리 인생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가 변해야만 가능합니다. 지난 학기처럼 마냥 그대로 학교생활을 한다면 이번 학기의 결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하려고 한다면 다른 데서 그 동기를 찾을 것이 아니라 개학이라는 단어에 들어 있는 `개(開)'라는 글자에 주목하면 될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새로운 학기의 시작을 개학이라 하지만 새로이 가게를 열면 개점이라 하고 시장의 문을 닫았다가 다음날 다시 열면 개장이라 하고 처음 손님이 들어 물건을 사가면 개시라고 합니다.

이처럼 문이 열리어 다시 무슨 일들이 시작되는 상황 앞에다가 `열 개(開)'자를 붙여 개학 개시 개장 등의 단어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닫혔지만 다시 열어 그 해야 하는 일들을 계속하면 그것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닫힌 문은 반드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닫은 문은 또 열어야 하고 열린 그곳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 왕래를 하며 살아갑니다.

옛날 우리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대문이 없었습니다. 다 열려 있는 공간에서 함께 어울려 살았지요. 아주 소통이 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닫혀 있는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간에 삶도 닫힌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닫고 닫는다고 닫힌 감정을 다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오는 답답한 감정에 익숙해져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서로 간에 소통하며 어울려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도 자연 줄어들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폐쇄된 환경에 적응하였다 해도 단절되어 살아가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은 내가 아무리 숨기고자 해도 모든 것이 다 노출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숨기면서 살아가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서로 닫힌 문들을 열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때 개학날에 맛보던 새로운 가능성과 설렘으로 늘 새로운 성취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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