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차례상
사라지는 차례상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01.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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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20여년 전 제주도의 한 고급 관광호텔에서 설날에 차례상을 객실 서비스로 제공했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미 그 몇 해 전부터 공공연히 호텔업계에서 제공하던 서비스였는데 이 사실이 신문에 기사화하자 유림에서 혀를 차며 개탄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조상에게 차례도 지내지 않고 관광지에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당연히 유림에서는 `상놈'으로 보일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불과 한 세대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이젠 관광지에서의 호텔 차례상 따위는 뉴스도 아닌 시절이 돼버렸다.

온라인 설문조사 회사 피앰아이(PMI)가 이번 설을 앞두고 20~50대 이상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차례를 지낼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40%가 아니라고 응답했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이유로는 `간소하게 보내기 위해서'가 24.3%로 가장 많았고 `종교적 이유'가 22.3%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이어 `다른 가족이 지내기로 해서'(8.5%) `경제적 부담이 돼서'(4.5%) `집안 어른이 없어서'(4.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가족간의 불화 때문'이라는 답변도 나왔다. 간소하게 보내기 위해서나 집안 어른이 없어서, 가족간의 불화 등의 답변에 유림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듯 요즘 주문 차례상 음식 서비스 업체들이 바빠지고 있다. 집에서 차례 음식 만들기에 지친 주부들을 겨냥해 10여년 전부터 조금씩 생겨났는데 지금은 옥션이나 지마켓 온라인 쇼핑몰에 히트 상품으로 자리해 명절 때마다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값도 비교적 싼 편이다. 3~4인 가정이 지낼 차례상 차림의 가격은 배송료 포함 15만원 정도인데 구색도 제대로 갖췄다.

대추, 밤, 곶감, 약과, 산자, 동태전, 고기전, 삼색꼬지전, 소고기 산적, 도라지와 고사리 등 삼색나물, 탕국, 식혜, 조기 1마리, 제사용 떡, 황태포 등이 제공된다. 주문한 가정에서는 밥과 술만 준비하면 된다.

비록 수입산 농산물이 포함됐지만,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추정한 올해 설날 4인 가족 차례상 비용이 24만원인 것에 비하면 무려 9만원이나 싸다.

대형마트에서도 이번 설날을 앞두고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팔아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에서 선보인 전 세트와 차례용 나물 반찬 등은 설 하루 전 오후에 일찌감치 동나 주부들이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통시장에서도 차례 음식을 만들어 파는 전집 같은 경우 저녁 늦게까지 장사진을 칠 정도로 손님들이 넘쳐났다.

집에서 직접 재료를 사다 만드는 것보다 마트나 시장에서 사다 쓰는 것이 일손도 덜고 더 싸다는 판단에 주부들이 `완제품'을 선호하는 것이다.

씁쓸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나 1인 가구 시대의 도래로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올해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는 20~50대 응답자가 무려 15%나 차지했다.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설이나 추석만큼은 고기와 떡, 과일을 성의있게 준비해 조상을 모시던 우리 고유의 전통. 어쩌면 한 세대 후쯤에는 `조율이시, 홍동백서'의 차례상 차림이 향교에서나 볼 수 있는 국가무형문화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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