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눈물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7.01.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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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눈물이 창밖 빗물처럼 흐른다. 주책없는 눈물에 남자는 당황스럽다. 누선에 이상이 있거나, 뇌신경 세포들이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지금 이 자리는 묵직한 얼굴로 잘잘못을 조목조목 짚어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그런데 할 말을 잃고 훌쩍거리는 모습이라니 기가 막히다.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자신도 밉지만, 눈물범벅이 된 모습을 보인 것이 부끄럽다.

눈물로 소기의 목적을 이룬 셈인가. 한참을 숨죽이고 바라보다 그가 미안하다고 말한다. 조금 전 서슬이 시퍼렇던 목소리가 한풀 꺾인 음성이다. 남성은 여성의 눈물에 약하다고 하던데,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는 것도 같다. 누선이 타이밍을 잘 맞춘 부분도 있다. 어쨌거나 눈물 덕분에 서럽고 기막힌 순간을 모면한 꼴이다.

눈물은 나의 성정을 알고 미리 방어책을 편 것일까. 동안에 나와 그의 행동을 세세히 살펴본 것이 분명하다. 상대가 `갑질'을 일삼으니 말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할 말이 없으니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자신의 결점을 덮고자 애쓰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래서 이성적 판단보다 먼저 눈물의 기관인 누선이 알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 같다.

인체의 하고많은 기관 중 행동대장이 왜 하필 눈물이던가. 말 주변머리가 없으니 말로도 당하지 못할 테고,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하다. 바로 나 홀로 감방에 들기에 십상이다. 어찌 보면, 감방보단 눈물을 선택한 것이 합당하다. 얼굴에 흐른 투명한 액체는 손으로 쓱 닦으면 흔적 없이 사라지잖은가. 울며 겨자 먹기로 누선의 위로에 감사를 보낸다.

톺아보니 눈물은 자유주의자다. 투명한 액체가 인간의 이성을 자유자재로 뒤흔든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에서 가장 기쁠 때 환호의 탄성이 아닌 눈물이 먼저 앞을 가리겠는가. 또한, 부모상을 당하여 애절한 슬픔은 물론이고, 심지어 고통까지도 감내한다. 눈물이 앞장설 땐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그 의미를 따지지 않고 하찮게 여긴 것이 삶의 오점이 아닌가 싶다. 눈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부끄러움만 내세우며 단순히 치부해 버린 탓이다.

인간의 삶과 눈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늘 조금씩 눈물이 나와 먼지나 이물질을 없애준다. 무엇보다 각막에 영양을 공급해준단다. 바람이 몹시 불거나 날씨가 추울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눈을 보호하고자 눈언저리에 눈물을 고이게 한다. 또한, 남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과 남의 어려운 처지를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기꺼이 나눈다. 그리 보면, 눈물은 둘도 없는 의리파에다 감성주의자이다.

눈물이 약인가 보다. 남자에게 그간의 노고를 퍼부을 기회를 놓친 건 못내 아쉽다. 그러나 감정을 추스르고 보니 차라리 말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앞으로 그를 보지 않을 것도 아니고 더구나 쏟아낸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잖은가. 지금껏 머리론 알면서 나의 모자란 행동을 모르고 세월을 보낸 내 탓이다. 눈물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무언의 깨달음을 가슴에 남기고 감정을 토닥인 것이다.

지금 내 가슴은 뻥 뚫린 듯 허하다. 인간에 대한 미움과 고통이 사라져서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 기분, 카타르시스인가. 때론 눈물을 흘려도 좋으리라. 눈물은 자의든 타의든 삶의 희로애락 속에 머물고, 자신의 삶의 모습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 내가 흘린 눈물을 주책없다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고통스럽고 뿔난 감정에 눈물이 한몫을 한 사건이다. 무엇보다 그 남자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눈물 많은 여자로 남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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