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섣달 긴긴 밤에
동지섣달 긴긴 밤에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1.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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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동지섣달 긴긴 밤이다. 밤이 깊을수록 동화가 그리워졌다. 화롯불에 밤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어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 그리고 고무줄놀이도 아련하게 그려진다. 어릴 적 이불 속에서 듣던 옛날이야기를 내 아이에게도 풀어놓았었다. 등을 토닥이며 옛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이도 나도 절로 잠이 들곤 했다. 선조로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던 이야기가 TV애니메이션으로`머털도사', `배추도사, 무도사' 등 옛날이야기가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그때는 주전부리로 어지럽혀진 방, 좀 지저분하면 어떠랴… 아이들과 배 깔고 뒹굴며 옛날이야기 방송 프로그램 속으로 푹 빠져들기도 했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있는 집에 가 본 적이 있다. 실제로 운전이 가능한 자전동차가 거실에 있었다. 아이 방엔 장난감과 컴퓨터 그리고 벽면 가득 한 책은 절로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었다. 아이 방 책꽂이엔 외국어교재 교구가 넘치고 있을 뿐 전래동화나 옛이야기는 물론 그림책조차도 없었다. 아이 방에서는 인기도서인 3D 입체 영상북, 바다 속을 탐험하고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우주행성, 그리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공룡들의 입체 탐험을 영상으로 관람하는 아이는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엄마를 부를 때도 옹알이 같은 발음으로“마~암(mother), 인사도 굿모닝(good mornin g)”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제대로 발음을 하지도 못하는 아이가 근~머더(grandmother) 라고 할머니 말씀처럼 혀 꼬부라진 소릴 하니 좀처럼 대화가 되질 않는다. 아이는 아이대로 가슴을 치며 답답하단다. 할머니는 마냥 귀엽기만 한 손주가 그래도 좋단다. 서로 이국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음성만 높을 뿐 소통불가이지만 눈빛만 보면 척척 알아듣는 할머니의 센스가 놀랄 일이다. 일상생활을 모국어보다 영어발음에 열을 올리고 퍼즐 카드도 온통 영어, 영어다. 그렇게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 영어로 아침을 열고 잘 때도 영어로 잠을 청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옛날, 옛날에~'하면서 등을 쓰다듬으며 잠을 재웠고 나 역시 그렇게 자란 기억이 생생한데 요즘 아이들에겐 옛날이야기는 별로 대수로워 보이질 않는다. 아니 모르는 것 같다. 글로벌시대, 머리 위로 드론이 날아다니고 로봇이 일상생활에 기여를 하고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을 두는 세상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왜 이리 허전한 걸까.

어느 영어학원 홍보에 `세 살 영어실력 여든 간다.'라는 문구가 있다. 글로벌시대에 당연하나 아무리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해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격이다. 어려서 배운 것이 그만큼 중요하지만 영혼이 없는 로봇처럼 삭막한 모랫바람이 이는 건 나만 그럴까. 물론 모델이나 유명인들은 어디서든지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처럼 늘 행동을 한다고 한다. 당연 신세대 부모들은 자기주도의 학습으로 일상생활에 모든 것이 몸에 배도록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을 하고 행동하여 습관이 되도록 세뇌 아닌 세뇌를 시키는 것이 당연할 일이겠지만 잔잔하면서도 쓸쓸함이 묻어난다.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다. 여성들의 사회활동 증가로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하나만 낳아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은 물론 출산을 늦추다 보니 저출산의 원인이기도 하다. 핵가족이 되면서부터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 크다 보니 높은 교육열은 나 하나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향교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예절, 인성 등 전통문화교육을 계승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가슴 한쪽이 훈훈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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