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최종 목표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 박숙희<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16.12.0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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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가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 상권 서른 번째 이야기는 황벽 희운선사(黃蘗 希運禪師)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황벽 스님이 말씀하셨다. “본원청정한 마음의 자체가 항상 스스로 둥글고 밝아서 두루 비추지만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다만 견문각지를 인식하여 마음을 삼아 견문각지에 덮인 바가 되었기에 그런 까닭으로 정명본체를 보지 못함이라. 다만 당장에 무심하면 본체가 스스로 나타난 것의 비유컨대 큰 태양이 허공에 올라 사방을 두루 비쳐 다시 장애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물은 처음 나오는 것이 근원이고 나무는 뿌리가 근본이다. 그래서 물과 나무의 본원과 같은 본래의 마음자리를 본원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본래가 둥글고 밝기 때문에 우주법계를 널리 두루 비추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본원청정심을 깨닫지 못하고 견문각지를 마음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겠다.

견문각지라고 하는 것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을 말한단다. 見은 시각이고 聞은 청각이고 覺은 후각, 미각, 촉각이고 知는 지각을 말한 것이란다. 세상 사람들은 밝은 태양이 먹구름에 가려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거기에 덮여 본원청정심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견성을 못한다는 뜻 아니겠는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본원청정심체를 제대로 알 수가 있는지? 그 방법은 바로 무심(無心)이라는 것이다. 직하(直下)는 당장에 바로 그 자리를 말한다. 당장에 무심만 하면 본원청정심체를 본다는 것이다. 견문각지를 마음으로 착각해서 견문각지에 끄달리면 불심이 못 되는 것. 그것을 초월하면 무심이 되는 것이란다. 그러면 본원청 정심체, 정명본체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마치 밝은 태양이 먹구름이 없는 상태에서 허공에 높이 떠서 걸림 없이 사방을 두루 비추는 것과 같이 된다는 것이다.

위 황벽 스님 말씀은 `무심'이라고 하는 두 글자에 핵심이 있는 것이겠다. 이는 견문각지를 마음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 아닐런지. 견문각지로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은 무심이 아니고 유심이라는 것. 그러니 그 분별심을 떠날 때 무심이 되라는 것이겠다. 그래야 정쟁심체가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 즉 무심(無心)은 이처럼 평상심(平常心)이라는 것이겠다.

누구든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권한을 행사한 대가를 혹독히 치른 경험이나 향후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요즈음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런 형국이다. 그래서 그를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 높다. 그 높은 항의와 비난의 촛불이 광화문을 뒤덮고 야당의 질타 목소리도 야단법석이다.

이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목표일 수는 없다. 잘못된 국정운영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향후 대권주자들의 선언 등을 꼼꼼히 살피고 개헌을 하여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권한을 바꾸는 국가적 결단이 있어야 하겠다.

황벽 스님 말씀 중 `무심'의 핵심은 분별심을 떠날 때 무심이 되어 정쟁심체가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 이와 같이 무심(無心)은 평상심(平常心)이라는 것처럼. 야권은 언론이 파헤친 최순실 문제에 무임승차한 모습을 국민에게 더 보이지 않으려면, 그 문제는 국민이 알 만큼 알고 있으니 기분대로 쏟아내는 온갖 막말과 아무 근거 제시 없이 제기하는 의혹은 이제 소음으로 들릴 뿐이니, 평상심의 리더십으로 여야가 난국 수습 안을 합의하여 위중한 국정 시스템호가 순풍하는 책임감이 우리의 최종 목표라는 것을 잊지 말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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