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47>
궁보무사 <247>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0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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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재수가 없으려니
"그. 그럼. 당신이 이걸 지하감방에 있던 놈들에게 쥐어주고 내가 보는 바로 그 앞에서 향정이를 윤간(輪姦)하도록 시켰었단 말이요"

두릉이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이며 당황한 듯 다시 물었다.

"흥! 잘 아시면서 저에게 그걸 왜 물어보시나요"

그의 아내는 침대 위에 비스듬히 앉은 채 남편 두릉을 매섭게 째려보며 대답했다.

"여보! 향정이는 죽었소. 다섯 놈들에게 번갈아가며 몸이 더럽혀졌다고 비관을 한 나머지 내가 보는 바로 그 앞에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단 말이요. 나이도 아직 새파랗게 젊은 아이인데 너무 불쌍하지 않소"

"흥! 젊고 예쁜 첩이 일순간에 자기 성질을 참지 못하여 자살한 것은 불쌍하고 한평생 자기 남편 출세를 위해 미친년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뒷바라지해 주다가 이제 겨우 살만하니까 찬밥 신세로 되어 생과부 노릇을 하고 있는 본처는 불쌍하지 않나요"

그의 아내가 여전히 살기등등한 눈으로 두릉을 노려보며 말했다.

두릉은 뭐라고 큰소리로 호통을 다시 쳐주려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개가 꼬리를 감추듯 입을 꼭 다물고 눈길을 딴 곳으로 돌려버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릉은 멀거니 허공에다 두 눈의 초점을 맞춘 채 숨고르기를 하고난 다음. 천천히 아내에게 눈길을 다시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부인! 내가 잘못했소. 이 모든 것이 내가 부덕한 탓이요. 용서를 바라오."

"그 말씀 진정으로 하시는 거예요"

"......."

"여보! 제발 체통을 차리세요. 당신이 팔결성 성주님께 온갖 충성을 다하고 누구 못지않게 자기 부하들을 아껴주는 덕장(德將)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그러나 그것은 따지고보면 우리 가문을 빛내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엉뚱하게도 그 방법들 속에 너무 깊숙이 빠져 있다구요. 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내팽개친 채 팔결성과 자기 부하들을 위하고 젊은 첩년만을 위해 봉사한다면 당신이나 나나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예요 당신의 그런 쓸데없는 아집 때문에 당신 자신은 물론 우리들의 아까운 인생까지도 모두 날려버리란 말인가요"

그의 아내는 울부짖듯 이렇게 소리치며 앉아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두릉의 넓은 가슴팍을 두 손으로 마구 때리고 잡아 뜯었다.

"알았소! 여보! 내가 어찌 당신의 참뜻을 모르겠소. 모두다 내 잘못이니 제발 고정하시오."

두릉은 이렇게 말하며 몹시 흥분한 상태로 있는 자기 아내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아 주었다.

바로 이 시각 쯤.

한벌성 내덕의 집에서는 웬일인지 통곡하는 소리가 밤하늘의 싸늘한 공기만큼이나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덕의 열 살 먹은 어린 아들이 애지중지 키우던 누렁이가 별안간 달려오는 마차에 치어 그만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누렁아! 네가 비록 말을 못하는 동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랑 정이 들대로 들었는데."

"누렁아! 어떻게 하냐. 네가 가면."

"아이고. 아이고. 불쌍해라. 우리 가족이나 같은 놈이었는데."

마차 바퀴가 가슴을 깔고 지나가버려 완전히 흉물스럽게 죽어버린 개 한 마리를 마당 한복판에 놔둔 채 아까 초저녁부터 한밤중이 된 지금까지 이렇게 줄곧 울어대니 내덕의 집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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