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그래야 한다
밤은 그래야 한다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11.08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도심에 밤이 있을까? 가끔 그런 의문이 든다.

밤은 분명 찾아온 것 같은데 저답지 않아서다. 무엇이든지 그 다울 때가 좋다.

찬연한 불빛은 지지 않는 해가 되어 도심을 비춘다. 밤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찾아와 슬며시 어둠을 디밀어 보지만 이내 구석진 곳으로 떠밀려난다.

지친 도시 또한 불빛과 소음의 공해 속에서 몸살을 하다가 아침을 맞는다. 밤을 잃어버린 도시나 저를 찾지 못하는 밤은 사람들을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

각성된 뇌는 잠을 잊은 채 거친 호흡으로 도심을 휘젓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어지러운 꿈과 날카로운 빛의 여운에 숙면을 취할 수가 없다.

불안한 사회를 등에 지고 초조한 눈빛들은 무엇을 쫓아가고 있는가. 알 듯 모를 듯 나도 가라앉는다.

밤이 어디로 갔을까 두리번거리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둠은 잔뜩 주눅이 들어 거기서 머뭇거리고 있다. 그 많은 별도 다 잃어버린 채….

별이 떠난 밤하늘은 황량하다. 우리를 설레게 할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띄엄띄엄 헤아릴 수 있는 몇 개의 별이 산골 가로등처럼 하늘을 지키고 별을 찾아 떠나는 어린왕자의 목소리만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왜 자꾸 잃어가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잃어가는 것이 많을수록 우리의 가슴은 메말라서 타들어 간다. 인간의 두뇌가 폭풍 같은 혁명을 일으키는 사이에,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는, 모골송연한 후유증을 감당 못하는 세상이 올까 겁이 난다. 별을 모르는 아이들이 감성 없는 로봇이 될까 걱정스럽고 시인이 사라진 세상엔 무엇이 남을까 두렵다.

21세기를 살며 도시의 눈부심을 타박하는 것은 얼빠진 소리라 하겠지만 도란도란 밤과 함께 잠들던 촌놈의 근성이라 해두자. 그때는 암흑천지 밤이 오면 숱한 별들 중에 하나가 내려와 등잔불이 되었다.

하늘과 밤이 그다웠고 어둠은 아득한 새벽을 꿈꾸고 있었다. 무성한 별과 어스름한 등잔불이 지키던 밤의 기억은 이제 아득하다.

산골을 한번 찾아가 보아라.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은 산골 오지의 하늘은 지금도 별이 뜨고 진다.

칠흑 같은 어둠에 묻힌 밤이 저다워서 좋다. 띄엄띄엄 새어나오는 불빛은 어둠에 싸여 그 자리 사방둘레만 비춘다.

멀리서 보면 간당거리는 불빛의 안간힘은 처연함마저 든다. 밤은 그래야 한다.

어둠 한 자락 이불 삼아 그 밤에 묻혀서 잠들고 싶다. 수런수런 풀벌레 소리 자장가로 누적된 잠을 한 보름 몰아 달게 자고 나면 내게서도 풀냄새가 나려나. 그래서 북극성도 북두칠성도 별무리를 이끌고 산골을 찾아 떠났다고 별지기가 말했던가. 별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별은 꿈이기 때문이다.

달이 뜨지만 그윽한 달빛을 잃어버린 도시의 밤에 누워 그런 밤을 갈망한다. 스위치를 내리면 먹빛 같은 어둠이 가득차고 달빛이 창가에 머물다 가는 밤, 별이 돌아와 제자리를 지키고 올려다보면 별의 전설이 떠오르는 밤, 사람이 그 안에서 안녕히 잠들고 평화로이 꿈꾸는 밤을….

이 시절이 이리도 시끄럽고 절망이 들락거리는 이유는 저를 잃어가는 불안심리의 표출이다. 하늘이 하늘답고 밤과 낮이 저답고 사람 또한 제자리에서 가장 사람다워 질 때 모두가 평안지심이 되리라.

절망이 바닥을 치면 희망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