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45>
궁보무사 <24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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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우리 50년 우정이 허물어져서는 안 될걸세"
12.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이보게 두릉! 자네도 들었겠지 자네 부하 백곡이 동북쪽으로 이동 중이던 부대를 그냥 내팽개친 채 자기 패거리만 살짝 빼내어 가지고 몰래 달아나버렸다는 걸."

밤늦게 팔결성 장수 두릉이 있는 곳으로 아들 각리와 함께 찾아온 창리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이렇게 급히 물었다.

"나도 그런 보고를 들었네. 대체 어찌된 것인지 자초지종을 자세히 조사해서 다시 보고하라고 부하들에게 일러두었다네."

두릉이 짐짓 능청을 떨어가며 대답했다.

"어허! 그거 참! 백곡이 끝내 오근장 성주님의 명을 거역할 셈인가 이러다가 자네마저 성주님의 신망을 잃게 되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나"

창리가 정말로 안타까운 듯 두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나 역시 안타깝다네. 이상한 일로 인하여 좋은 부하 하나를 내가 졸지에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말일세."

두릉이 한숨을 길게 몰아내 쉬면서 말했다.

"이건 성주님에 대해 명백한 항거야. 어떠한 변명도 필요가 없게 되었다네. 이제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백곡을 찾아내어 그의 목을 쳐야만 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두릉 자네의 위치가 위험해 지는 건 물론이고 친구인 나까지도 입장이 몹시 난처해지고 말걸세."

"창리! 알았네. 아무튼 좋은 결과가 되도록 내가 힘껏 노력해 보겠네."

"허허.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이미 글러버린 것 같으이. 아까 오동동님께서도 노발대발하여 외북 장수를 급히 불러 뭔가 지시를 내린 것 같다네."

창리가 빈 입맛을 쩝쩝 다시며 넋두리 늘어놓듯 다시 말했다.

두릉은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다시 또 내쉬며 천천히 다시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네. 친 자식도 자기 맘대로 못 하는데 부하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무튼 창리 자네에게 심려를 끼치게 되어 무척 미안하네. 성주님께서 내게 내리시는 벌이 있다면 달게 받도록 하겠네."

"두릉! 잘 생각하게나. 이 따위 일로 인하여 우리 두 사람의 50년간 우정이 절대로 허물어져서는 안 될 걸세. 내 오동동님을 만나 뵙고 최대한 선처를 구해볼터이니 자네는 어서 빨리 백곡을 불러들이던가. 그의 목을 따올 궁리나 해보게."

창리는 몹시 아쉬운 듯 이렇게 말을 남기고는 함께 온 아들 각리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창리가 돌아가고 난 후 두릉은 또다시 걱정과 불안 속에 휩싸였다.

'아! 아! 아무래도 이번 일은 무사히 적당히 지나칠 것 같지가 않다. 불같이 급한 성격을 지닌 오근장 성주가 지금 저 모양 저 꼴이 나버렸으니 언제 어느 누구에게 엉뚱한 화풀이를 해댈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그런데 대충 보아하니 성주님의 첫 번째 화풀이 대상이 아무래도 나 자신이 될 것만 같은 불길한 기분야! 그렇다고 충성된 내 부하를 확실한 사지(死地) 속으로 들어오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어찌 되든 좋아, 원래 빈털터리 무지랭이나 다름없었던 내가 다행히 운이 좋아 이런 자리에까지 올라왔으니 뭘 더 바래. 이제 모든 걸 되는 대로 놔둔 채 물이 흐르면 그 물결에 따라 내 몸을 맡겨버리는 수밖에.'

두릉이 이렇게 생각하며 긴 한숨을 몰아내 쉬고 있는데, 학소가 뛰어 들어와 아뢰었다.

"장수님! 참으로 희한한 일이옵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학소는 손에 쥔 조그만 가죽 주머니를 거꾸로 뒤집어가지고 그 속의 내용물들을 탁자 위에 우르르 쏟아내었다.

"으으응"

두릉의 두 눈이 갑자기 큼지막하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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