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무심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8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 장 규 <충주고 교사>

한해가 또 저물고 있다. '또'라는 말 자체가 무슨 의지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금상첨화(錦上添花)란 말은 '또'가 희망적일 때 쓰인 말이며,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말은 그것이 절망적일 때 사용된 말이다. 그것이 희망적이든 절망적이든, '또'는 우리 삶의 한 속성이 반복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그 말은 동시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계획을 세워 무엇인가를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은근히 깨우쳐주기도 한다. 자칫하면 단순히 '또'의 반복 속에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교수신문이 '밀운불우(密雲不雨)'를 올해의 우리 사회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선정하였다는 보도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러면서 2003년의 우왕좌왕(右往左往), 2004년의 당동벌이(黨同伐異), 2005년의 상화하택(上火下澤)도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붙일 수 있는 '또'는 좀체 나아지지 않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환호 속에 맞이했던 2000년대의 초반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잠자고 있던 시간을 깨워 그것을 흐르게 하고, 때로는 그것을 경영하고, 때로는 그것에 얽매여 살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시간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을 깨우는 그 순간 인간은 무한히 위대할 수 있었고, 동시에 무한히 외로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시간의 흐름이 우울한 색으로만 되어 있다고 푸념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네 삶을 시간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려놓고 그냥 흘러만 갈 것인가.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에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險難(험난)하고 刻薄(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 '설날 아침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