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뜻'=갑질(?)
`회장님의 뜻'=갑질(?)
  • 안태희 기자
  • 승인 2016.10.19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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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안태희 취재2팀장(부국장)

요즘 청주의 한 중소건설회사 대표는 억울함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청주에 있는 모 제조업체의 공장증설 공사를 따내기 위해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견적서 등을 제출하거나 관련 행위를 한 게 27차례나 된다.

건설회사 대표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발주회사의 갑질 수준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공사단가를 후려치는 것은 기본이고, 정화조 공사도 공짜로 해달라고 했다. 여기에 `회장님 측근'이라면서 전체공사의 50%를 넘는 철골공사를 특정업체에 주라고까지 했다.

모든 게 `회장님 뜻'이었다. 회장님의 뜻으로 전달된 것 중 압권은 비자금 2억8000만원 조성요구였다.

9억1000만원짜리 공사에 비자금 2억8000만원을 더해 총 11억9000만원짜리 계약서를 쓰고, 2억8000만원을 발주사에 다시 줘야 한다는 요구였다. 발주회사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서 건설회사 사장의 결심을 재촉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제보내용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비자금을 요구한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발주회사 대표의 대답이다.

그는 순순히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게 정상적인 거래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계약이 성사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항변했다.

비자금을 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는 듯한 답변에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연히 기자에게 `그런 적이 없다'라고 답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비자금 요구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는데, 공사단가 후려치기, 하도급업체 지정, 추가공사 공짜요구 등에 대해서 무슨 죄책감이 있을 것인가.

지인에게 건설계약상의 갑질 폐단이 어느 정도인가를 물어봤다. 지인은 그게 뭐 새삼스러운 일이냐는 반응부터 보였다. 그도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시달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일이 워낙 은밀하게 당사자 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이번처럼 시도자체를 시인한 것 자체가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지인은 이런 일을 너무 크게 보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오히려 이런 일들이 알려지면 `을'인 자신들에게 별로 이로울 게 없다면서.

민간분야뿐만 아니라 일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생각도 문제다. 관급공사를 수주하면 일정비율을 장학금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고 하니 칼만 들지 않았지 강도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다.

그렇지 않아도 건설업계가 수주물량 격감과 이익률 하락으로 생존하기조차 힘든 상황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고리대금업자가 `선이자'떼는 식으로 기부를 강요하는 게 있을 법한 일인가 말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는 했지만, 민간분야나 공직분야에서의 `문화지체'현상은 여전한 것 같다.

공사를 주는 입장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법을 어기고, `을'의 생존권을 쥐락펴락하겠다는 오만한 사고가 2016년에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까지 `회장님'의 지시대로 갑질에 매달릴 것인지 군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업체의 목을 죌 것인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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