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뒤란
삶의 뒤란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6.10.13 2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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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기차를 타기 위해 오송역을 향했다. 역에 도착했을 때 어둠이 그물처럼 내려와 역사(驛舍)를 가득 뒤덮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열차가 멈추는 플랫폼에 섰다. 옆 라인으로 사람들을 태운 밤 열차가 괴물 같은 속력으로 휙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속도가 몰고 오는 공포감을 느끼며 어둔 시간 속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한 시간 이십 분만에 신경주에 도착했다. 12시가 다 되어 도착한 나를 그녀들이 밤 마중 나와 있었다. 청주에서 함께 자가용으로 출발하기로 했었으나 저녁 일정이 있던 나는 그녀들에게 먼저 출발하라 했다. 그녀들은 오전에 출발했고 나는 밤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저만치 앞에 나를 향해 손짓하는 그녀들이 보였다. 나는 토끼처럼 팔딱팔딱 뛰며 팔을 뻗어 머리 위에 하트를 그려 주었다. 차에 타고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땅콩 오징어 등 오랜만에 여행길에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매개물도 잊지 않고 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정신 줄을 이완시키기 위해 맥주를 한 상 풀었다. 그동안 너무 나사를 바짝 조이며 살았으니 잠시라도 정신의 나사를 풀어보자며 상 둘레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네 명이 맥주 두 캔을 채 못 비웠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술도 못 배우고 뭐했는지 모른다며 웃었다. 맥주는 접고 자리를 깔고 누워 수다를 풀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고 커튼 사이로 바람이 힐끔거리며 우리를 엿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일어나 씻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국립경주박물관에 갔다. 나는 문득 뒷면이 궁금했다. 오래전 수학여행을 왔을 때도 멋진 앞면과 그 속에 간직된 빼곡한 유물만을 보았었다. 이젠 뒤도 살피며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딜 가든 뒷면을 살피곤 한다. 뒷면을 보고 싶지 않느냐고 일행을 꼬드겼다. 뒤에 뭐가 있겠느냐며 시큰둥해한 그녀들에게 말했다. 쇼윈도에 마네킹이 멋져 보이는 건 뒷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무수히 많은 시침이 꽂혀 있는 뒷면이 뜨거운 조명을 받고 아픔을 숨기고 있기에 앞면이 빛나는 거라고. 햇살을 머리에 이고 박물관 뒷면을 돌자 목 잘린 부처들이 서 있었다. 그 즐비한 목 잘린 부처들을 보며 생각에 젖었다.

살면서 많이도 잘리면서 살아왔다. 가만히 잘려나간 것들을 되뇌어 본다. 나만 생각하던 까칠함도 여러 사람과 부딪히며 도마뱀 꼬리처럼 잘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자존심이 잘려나갔었다. 그러나 문득 드는 맘. 잘리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스스로 잘라 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모났던 성격도 잘라내고 콧대 높이던 자존심도 잘라 땅에 내려놓고, 그러면서 점점 둥글어지는 것이리라. 점점 더 부처가 되어가는 것이리라.

잘린 부처의 목에 머리를 올리고 사진을 찍어 본다. 나도 살아서 단 한 번이라도 부처가 되어 보자고. 아니 부처의 마음이 되어보자고. 나만 생각하며 달려온 인생 이제 부처처럼 남도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잠시 생각의 꼬리가 스쳐간다. 잘린 목이 있어야 온전한 목도 가치 있고 뒷면이 있어야 앞면이 빛나는 평범한 이치를 가을 신경주에서 멈추어 생각해 본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박물관 뒤뜰 가득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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