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44>
궁보무사 <24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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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실망하시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11.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바로 이 시각쯤,

한벌성 내에서는 자그마한 소동 아닌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덕과 사천이 가경처녀가 동굴 속에 모아두었다는 물건인 줄로 알고 마차에 가득 실어가지고 온 것들이 전혀 엉뚱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이건 제 것이 아니에요. 저나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은 사냥을 해가며 틈틈이 약초를 캐서 말리고 짐승 가죽들만 모아서 쌓아놓았지 저런 비단이며 마포 따위는 아예 없었다고요."

횃불을 집어들고 마차 위에 실려진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난 가경처녀가 이렇게 말을 하자 내덕과 사천은 완전히 허탈해진 기분이었다. 특히 내덕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어휴!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이걸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올 때 사천 몰래 좀 더 많은 것을 뒤로 빼돌려놓는 건데. 재수가 없으려니.'

내덕은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그러나 율량 대신이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지금 어떻게 뭐를 다시 해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율량은 이것들이 최근에 여자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강치 일행의 물건임을 대강 눈치챘다. 왜냐하면 이 물건들은 모두 새것일 뿐만 아니라 이런 것들을 그곳에 몰래 감춰둘 만한 자라곤 강치 일행 이외에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심정을 솔직하게 밝힐 수도 없기에 율량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렇게 말했다.

"이것들은 나중에 주인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니 일단 우리 성 안에 안전하게 보관시켜놓기로 하지. 확실한 주인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면 도둑놈들이 다른 곳에서 훔쳐다가 몰래 감춰뒀던 걸로 간주하여 우리 성 재산으로 만들면 되니까. 아무튼 수고들 많이했네. 그런데, 사천과 내덕! 어떤가 자네들이 내일 아침 한 번만 더 수고를 해줄 수 있겠나"

"아, 그 그러문요."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내덕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아까 수동이 하는 말을 들을 걸. 수동이가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서, 조금씩 빼돌릴 게 아니라 아예 마차 한 대를 통째로 그냥 빼놓고 보자고 하지 않았나. 그때 내가 그 말대로 따라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사천의 눈치만 보다가.'

내덕은 한없이 후회스러웠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사천과 함께 그냥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어떤가 아씨를 모시기가 힘이 들지는 않나"

율량이 자기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려는 가경처녀를 불러 슬그머니 이렇게 물어보았다. 물론 율량은 그녀로부터 '괜찮아요'라는 긍정적인 대답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물어보는 말이었다. 그러나 가경처녀의 대답은 의외로 솔직하고 담백했다.

"너무 힘이 들어요. 부용아씨께서는 목욕을 하실 때마다 자꾸만 저에게 듬직한 사내 하나를 불러다가 등을 박박 밀어보게 하라고 말씀하시니까요. 제가 그러시면 남들이 뭐라고 한다며 말씀을 드렸다가 아씨한테 크게 혼나기도 했어요."

가경처녀는 정말로 어렵고 지겹다는 듯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대며 말했다.

"어쨌든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해 아씨를 모시게나. 자네만한 여자 호위무사를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말이야."

"네. 많은 분들이 실망하시지 않도록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가경처녀는 율량 대신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난 후 부용아씨가 있는 곳을 향해 휘이익 달려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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