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변신
영웅의 변신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6.09.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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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참으로 낯설다. 철갑을 두른 둔탁함에서 벗어나 속이 드러나게 실선으로 연출한 로봇의 모습에 사로잡힌다. 정원 벽면에는 색소폰과 바이올린, 플롯을 지닌 연주자와 지휘자가 자리한다. 많은 인파에서 벗어나 꼭대기 층 정원을 찾길 잘한 일이다.

관현악 연주가 되고자 어떤 구성이 필요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생소한 광경을 어디에서 또 보고 들으랴. 로봇 태권브이의 감미로운 연주가 강남 S 백화점에 울려 퍼진다.

영웅, 태권브이의 변신이다. 기존 로봇의 역할을 180도 바꾼 작가는 발상의 선구자가 분명하다. 태권브이는 1976년생, 강동구 고덕동에 로봇의 비밀기지가 있다. 4층 건물 높이의 거구 신장을 가진 그의 역할은 외계인 침입을 막고,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이다. 백전백승의 이력을 지닌 태권브이가 연주자라니 믿기지 않는다. 그 이색적 결합이 새롭다.

악기를 든 로봇의 형상을 상세히 뜯어본다. 선홍빛 색소폰을 부는 자태의 선을 따라가면, 태권브이가 얼마나 악기 연주에 집중하는지 느껴지리라.

푸른색 바이올린을 왼팔에 얹고 다른 한 손에는 활을 쥔 모습은 또 어떠한가. 눈을 감고 음률을 타는 듯, 마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듯한 로봇의 형상이다.

거구의 자태로 검은 플롯을 손가락으로 조율하며 입으로 불거나, 두 팔이 허공에 정지된 상태나 금방이라도 지휘봉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착각이 들 정도의 자태다. 지휘자의 손짓을 따라 흐르는 교향악의 맑고 강렬한 하모니에 압도된다.

영웅의 변신을 꾀한 작가에게 묻고 싶다. 올해로 태권브이 탄생 40주년을 맞아 격납고에 박힌 운명이 안타까워 부활을 꿈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하 수상하여 그런가. 사드 배치 건으로 국회에선 폭언과 난동이 일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북한 소식으로 세계가 불안한 상황이다.

혹여 북한의 도발이나 전쟁으로 이어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태권브이의 연주는 더욱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평화를 위하여 비폭력으로 항쟁하다 스러져간 사람들이 떠오른다. 생각을 달리하면 로봇 또한 폭력성을 내재한다. 어린 시절 로봇의 주제가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폭력성을 품게 된 것은 아닌가 싶다.

로봇 태권브이도 상대방을 대화가 아닌 전투로 제압하지 않았던가. 분단국가로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전쟁에 대한 불안과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아무리 방어를 위한 사드 배치라 하지만 태권브이와 무엇이 다르랴.

선과 음을 표방한 태권브이 전시는 평화의 상징물이다. 악기를 든 태권브이는 예술로써 평화를 지켜가자는 암묵적 표현이 아닐까 싶다. 분단국가인 우리로선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태권브이의 연주는 각박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봄눈처럼 녹여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도록 여유의 마당을 펼친다. 더불어 사랑과 미움은 한 줄기라는 마음의 묘리(妙理)를 깨우친다. 영웅의 변신은 세계가 평화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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