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인 “토종벌 살리자” 눈물의 화형식
한봉인 “토종벌 살리자” 눈물의 화형식
  • 윤원진 기자
  • 승인 2016.09.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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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낭충봉아부패병 피해… 폐사 800군 벌통 소각

정부·정치권 등에 예방책마련 촉구 편지쓰기 행사도

20일 충주 신니면 내포긴들마을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애지중지하던 토종벌통 화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화형식장으로 가는 길에는 농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낭충봉아부패병으로 맞은 최악의 상항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들이 목격됐다. 이들은 (사)한국한봉협회 충북지회 주관으로 마련된 2016년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 소독·소각 시연회에 참석키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 한봉인들이다.

이런 걱정의 목소리도 행사장 인근 야지에 쌓아놓은 약 800군의 폐사된 토종벌통 앞에서는 침묵으로 바뀌었다.

휘발유를 뒤집어 쓴 벌통 주위에는 낭충봉아부패병으로부터 살아남은 토종벌 일부가 날아다니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화형식에 앞서 열린 사전행사에서 한국한봉협회 엄우섭 회장은 “다시 확산된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전국 2만여 토종벌 농가들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며 “벌이 추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듯이 우리도 이번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남자”고 호소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한 농민은 “일자리 전환 농가도 적지 않다. 답답한 심정”이라면서 “이번 소각이 조금이라도 질병 퇴치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이후 시연회에 참석한 한봉인들은 대통령, 환경부 장관, 각 당 대표 등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편지를 적어 우편함에 넣었다.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은 토종벌 농가를 6년간 쫓아다니고 있는 끔찍한 재앙으로 알려졌다.

2008년 처음 발생한 이후 2010년부터 전국을 휩쓸기 시작해 그 해 전국 토종벌의 98%를 폐사시켰다. 이후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해법이나 예방책은 없는 실정이다. 특히 충북은 2010년 사태 이후 최소한의 종복원 성공으로 종복원 실적 전국 1위를 달성하고 있었으나 2016년 일제히 재발한 강력한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한봉인들은 “이 병은 바이러스라 약이 없다”면서 “소각을 안하면 정부가 지원도 안해주니 어쩔 수 없이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일부는 “소각만이 해답이 아니다”라며 ‘멀쩡하지만’ 감병과정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토종벌을 태워야 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화형식 집행을 위해 야적된 토종벌통 앞으로 모여달라는 한국한봉협회충북지회 박찬홍 지회장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농민들이 애지중지하던 벌통은 순식간에 점화됐다. 구석구석 피어오르는 불길을 보며 한농인들은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낭충봉아부패병 벌통 살처분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던 한 농민은 번져가는 불길이 답답하던지 주위에 고사된 풀들을 뜯어다 불 붙은 벌통에 던지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솟아오르는 화염과 함께 “토종벌을 살리자”는 한 농민의 한마디 외침이 검은 재와 함께 9월의 높은 하늘로 날아 올랐다.

충북한봉협회 박찬홍 지회장은 “우리 토종벌과 한봉산업이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정부와 정치권에 실효성 있는 종합대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충주 윤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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