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친, 엄마
이 경 림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걸친 엄마가 눈을 흘긴다
시집 '상자들'(랜덤하우스 중앙)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를 입어본다. 예전에는 남루하고 촌스러웠던 엄마의 옷이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사납게 다그치던 시간이 당겨진다. 그래서 돌아가신 엄마의 옷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입는 것이다. 엄마가 들었던 곳마다 구멍이 나 있다. 골다공의 옷에 자신의 알몸을 집어넣는다. 팔이 있던 구멍에 팔을 넣고, 목이 있던 구멍에 목을 넣고, 다리가 있던 구멍에 다리를 넣는다. 이제 엄마가 되었다. 차마 그립다 말 못하고 지낸 시간이 무너진다. 자꾸만 목메게 올라오는 말의 몸통, 엄마. 어느 틈에 엄마가 돌아와 딸에게 말씀을 하신다. 이젠 잊거라, 엄마가 뭐니! 엄마는 언제나 딸의 몸을 떠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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