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40>
궁보무사 <24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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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여기까지 들어왔으니 확실하게 뽑아가지고 가야지'
8. 재수가 없으려니

'저 수염 하나만 번지르르하게 잘난 늙은이 하나 때문에 그동안 무술 실력이 좋았던 자들이 얼마나 분루를 삼켜가며 아쉬워했었어 물론 나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지만. 어쨌든 기왕지사 여기까지 들어왔으니 저걸 확실하게 뽑아가지고 돌아가야지!'

방서는 이렇게 생각하며 몇 번 심호흡으로 숨고르기를 하고난 다음 미리 준비해온 어린애 주먹 반쯤 되는 크기의 묵직한 쇳덩어리와 그것에 구멍을 내어 단단히 끼워 묶은 낚싯줄을 꺼내들었다. 방서는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그 쇳덩어리를 원 그리듯 천천히 돌리다가 잠자고 있는 사리성주의 흰 수염을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휘리리릭'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낚싯줄이 달려있는 쇳덩어리가 날아가 사리성주의 백설같이 희고 고운 수염 아랫부분을 통째로 정확하게 휘감아버렸다.

'끄으응.'

사리성주는 뭔가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지 이맛살을 크게 찌푸리며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웠다. 그 바람에 고래 힘줄로 단단히 꼬아서 만든 낚싯줄이 그의 길고 하얀 수염을 더욱더 단단하게 옥죄어 놓았다.

'으응 그, 그런데. 이상하다'

방서는 낚싯줄로 옥죄어 놓은 그의 수염을 잡아당겨 버리려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침실 안에는 그의 성격상 호위무사를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하더라도 함께 잠을 자고 있음직한 그의 애첩마저 눈에 뜨이지 않는다.

소문에 듣자하니 소수성 사리성주의 애첩은 무지하게 예쁘다던데.

'이상하다 설마하니 내가 오늘 밤 나타날 줄 미리 알고 그 여자가 어디로 살짝 달아났거나 몰래 숨어가지고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테고.'

방서는 혹시나 싶어 주위를 다시 한 번 더 살폈지만 역시 그의 애첩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쨌든 잘된 일이지 뭐. 있어봤자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이니.'

방서는 뭔가 아쉬운 듯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팽팽해진 낚싯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으으으윽! 아, 아이고!"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사리성주의 턱에서 하얀 수염이 뭉텅이로 쑤욱 뽑혀져 날아갔다.

'흐흐. 됐다!'

방서는 알맞게 뽑혀 나온 사리성주의 턱수염을 허리춤에 차고 온 조그만 자루 안에 쏙 집어넣고는 창문 밖으로 번개같이 몸을 날렸다.

"아, 아이고! 아이고! 아파라!"

갑자기 놀라 잠을 깬 사리성주는 자기 턱수염이 별안간 뽑혀져 나간 것을 알고 미친 듯이 팔짝팔짝 뛰어댔다. 성주의 비명을 듣고 저쪽 복도에서 경비를 보던 병사 서너 명이 칼을 들고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곧이어 위급함을 알리는 요란한 종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러나 방서는 가볍게 몸을 휙휙 날려가며 어둠을 틈타 앞으로 계속 뛰쳐나갔다.

지금 그의 빠르고 유연한 몸동작은 웬만큼 이력이 붙어 있는 도둑고양이에 비해 손색이 거의 없어 보였다. 한참 달리던 방서는, 커다란 우물가 바로 뒤편에서 몹시 당황한 듯 후다닥 일어나는 두 개의 사람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지금 저 두 사람의 옷차림으로 보건대, 사리성주의 침실 안에 있어야만 할 아리따운 애첩과 건장한 체격을 지닌 호위 무사임에 거의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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