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49>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4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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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수가 된 요정 다프네
"제우스여! 저를 월계수로 만들어 주소서"

원수를 사랑할 수 없어 나무로 변한 요정 다프네

"눈부신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와 맑고 깊은 계곡, 한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위에 노니는 수천 마리의 양떼, 아름다운 자연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8월의 브로크백 마운틴, 이곳의 양떼 방목장에서 여름 한철 같이 일하게 된 스무 살의 두 청년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대자연 안에서 깊어져간 그들의 우정은 친구 사이 이상으로 발전해 간다. (중략)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4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단번에 브로크백에서 서로에게 가졌던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안 감독이 연출한 '브로크백 마운틴'은 남자들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2005년에 아카데미 영화제 3개 부문을 수상하며 미국에서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금기시 되는 동성애를 다루어서인지 흥행에 실패했다.

세계의 신화를 읽다보면 의외로 동성애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에 놀라게 된다. 수천 년 전에 씌어진 구약에서도 여호와가 동성애를 죄악으로 크게 다룬 것은 금기시하는 동성애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론화되지 못했던 동성애에 대한 담론들이 최근 영화와 소설 등을 통해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기우(杞憂)일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태양신 아폴론은 아버지 제우스만큼이나 호색한이었다. 하지만, 여자를 유혹하여 침실로까지 끌어들이는 데는 제우스보다 한 수 아래여서 바람둥이로 크게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일부 신화학자들은 아폴론의 구애 실패가 이 세상에 새로운 나무와 꽃을 만들어내 자연을 풍요롭게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폴론은 여자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종종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동성(同姓)의 사랑을 얻는 데도 번번이 실패를 했다.

어느날 강가에 놀러 나갔던 아폴론은 요정 '다프네'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만다.

"무지개가 서린 새벽이슬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여, 나의 심장에 큐피드의 화살을 쏘았는지 나를 사랑의 올가미로 묶어버렸군요. 나는 이 세상에 빛을 주는 태양신 아폴론이라오. 세상에 부는 모든 바람도 나의 힘을 빌어서 불고, 천둥과 번개도 내가 도와주어야 칠 수 있다오. 이 세상은 나 아폴론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답니다. 여인이여, 바라노니 나의 사랑을 받아주시오."

"위대하신 아폴론님, 저를 사랑하시면 안 되어요. 저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다프네가 구애를 거절하자 아폴론은 화가 났다. 다프네의 사랑하는 남자만 없앤다면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아폴론은 요정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것을 살피고 다니는 태양신 아폴론의 눈에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요정 다프네는 달의 여신을 추종하는 여신 무리에 속해 있었다. 아폴론은 다프네가 사랑하는 남자가 피사의 왕자라는 것과, 왕자가 요정을 만나기 위해 여장(女裝)을 하고 매일 여신 무리에 숨어든다는 것을 알아냈다. 신들의 율법에는 그 어떠한 남자라도 달의 여신이 이끄는 여신 무리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율법을 어기다 발각되면 오직 죽음뿐이었다. 여장을 하고 율법을 어긴 왕자를 아폴론이 여동생인 달의 여신에게 일러바치자, 분노한 달의 여신은 율법에 따라 왕자를 죽였다.

요정 다프네는 졸지에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비탄에 빠졌지만, 거슬릴 것이 없어진 아폴론은 더욱 집요하게 다프네에게 접근을 했다. 더 이상 아폴론을 피할 수 없게 된 요정 다프네는 신들의 왕 제우스에게 눈물로 기도를 했다.

"신들의 왕 제우스여, 제가 사랑하던 남자를 죽게 만든 아폴론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지요 저의 약한 힘으로는 도저히 아폴론의 집요한 강요를 이겨낼 수가 없답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소서."

다프네의 기도에 응답하여 제우스는 그녀를 월계수 나무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월계수는 그리스어로 요정의 이름과 뜻이 같은 '다프네'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제 곧 다프네의 사랑을 차지할 것이라고 믿었던 아폴론은 낙심천만했다. 월계수로 변한 다프네는 아폴론의 손만 닿아도 몸서리가 쳐졌다.

"오, 다프네여! 나의 애인으로 만드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반드시 내 나무로는 만들고 말 것이오. 나의 머리와 칠현금, 화살통을 치장할 때는 평생 그대로 장식을 할 것이오."

아폴론은 그의 모든 치장에 월계수를 사용했다. 아폴론의 첫 번째 성전인 델포이 신탁소는 월계수 숲으로 이루어졌다. 나중에 다시 지은 신전에도 월계수를 옮겨 심었다. 거대한 용을 죽였을 때는 월계수 잎으로 용의 피를 닦아 냈다. 속죄와 정화, 힘을 상징하는 월계수는 영웅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 투구에 꽂아 장식을 하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월계수에 번개를 막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번개가 칠 때 월계관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월계수가 아폴론의 나무가 되면서 월계수는 승리뿐 아니라 예언과 시적(詩的) 영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국 왕실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에게 내리는 칭호가 '계관시인(桂冠詩人)'인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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