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파시
텔레파시
  • 전현주<수필가>
  • 승인 2016.08.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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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전현주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과 아이들을 향해 텔레파시를 보낸다. 보고 싶은 이들과 힘겨운 일이 생긴 사람에게도 그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달려간다. 매체를 통해 사정을 알게 된 사람들이나 이미 고인이 된 분이 대상이 될 때도 있다.

처음 텔레파시를 시도하도록 만든 사람은 오빠였다. 그는 나보다 3년이나 먼저 태어나 동생 괴롭힐 준비를 다 해놓고 있었다.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가 새로운 것에 빠져들어 행복해 할 때마다 내 꿈을 가차없이 시시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가끔 어린이 신문을 가지고 오셨다. 그것은 서울 변두리에 사는 아이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신문에는 숨은 그림 찾기와 만화를 비롯해 재미있는 기사들이 가득했다. 나는 오빠보다 먼저 신문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으나 만만치가 않았다. 그중에서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숨은 그림 찾기를 한 후 자기가 찾은 그림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 놓는 것이었다.

텔레파시는 순한 사람들의 마음 전달방법이다. 나는 오빠와의 갈등을 평화롭게 극복해 보고자 텔레파시를 선택했다. 신문을 독차지 하는 오빠를 조용히 노려보면서 마음속으로 ‘그만 읽고 나가 놀아라.’를 되풀이하였다. 어쩌다 성공을 하면 큰 기쁨을 느꼈지만 대부분은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텔레파시는 힘없는 사람들의 안전한 공격방법이다. 오빠가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우표 수집을 시작했을 때 나는 울고 싶었다. 그는 툭하면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우표 심부름을 시켜댔다. 그즈음 내가 쏘아 보낸 텔레파시는 평소보다 유난히 강력했었나 보다. 오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표 수집에 싫증을 냈고, 그 후유증으로 자기에게 그런 취미가 있었다는 기억조차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성적이 형편없다. 욕실에 있는 남편에게 아무리 텔레파시를 보내도 늘 샤워기를 돌려놓지 않고 나와서 가족들을 놀라게 한다. 오늘도 운전을 하는 그에게 마음을 전했으나 알아듣지 못했다. 난감한 곳에 주차한 후에야 상황을 눈치 챈 그는 “그러니까 제발 말로 해, 마음속으로 말하지 말고….”하더니 만약 성공을 했다 해도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 발언은 내 텔레파시의 최대 수혜자가 할 말은 아닌 듯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이심전심의 기쁨을 이제 와서 나더러 포기하라는 말인가.

철모르던 시절에는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절실한 바람들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도 되레 그럴 수 있지 하며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는 왠지 성공하지 못한 반쪽짜리 텔레파시들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것 같지는 않다.

텔레파시는 기도다. 생각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날아가는 영혼의 화살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보탤 수 있는 영적 기부요, 때와 장소와 대상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도모다. 일일이 말로 하면 잔사설이던 것도 마음으로 말하면 기원이 된다. 늘 붙어 지내면서도 멀리 있는 듯 느껴지는 나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넌지시 텔레파시를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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