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만 좋은
허울만 좋은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08.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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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자세히 보면 맵시와 빛깔이 곱상하다. 이름도 예쁘다. 보드레한 날개옷으로 금방 날아오를 것 같다. 능청스레 잡아볼까 손을 내밀었더니 톡 튀어 달아난다. 우아하게 선녀처럼 날아오를 줄 알았다. 행실도 고울까? 마음까지 고운 것은 아니라서 나비가 아닌 벌레이다.

들리는 소문이 곳곳마다 중국 꽃매미가 산통을 깨고 미국선녀벌레가 평화를 깨고 있단다. 내 집 남새밭과 꽃밭에도 벌떼같이 들러 붙어 있다. 내 것이 있어야 아름다운 자리에 남의 것이 허울 좋은 이름으로 난무한다. 나비였으면 환상의 풍경이련만 내 것은 어디 가고 들러붙어 기생질이다. 집단폭력이다.

장대비라도 내리면 저 불청객이 떠날까 싶은데 습한 열기에 가뭄까지 보탠다. 바람에 한껏 곧추세우던 진초록 자태에다 끈적끈적한 배설물을 뿌려놓고 타들어가는 속처럼 시커먼 그을음으로 칠을 해놓았다.

일그러진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 불안하다. 피를 말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다급하다. 봉긋하게 살 오른 수세미와 여주가 그런 오물을 뒤집어쓰고 비명이다. 응급처방으로 물 호스를 들이대고 등이며 얼굴을 닦아내고 모기약을 뿌렸더니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대추나무에도 촘촘하게 들러붙어 수액을 빨아대고 적단풍 몸뚱이도 성한 곳이 없다. 가지를 세차게 흔들었더니 자지러지다가 사람에게 덤빈다. 염치없이 당당하게 제 삶의 이유를 들이댄다.

하필이면 천상선녀의 이름을 달고 무법자가 되었을까. 매미면 매미였지 꽃은 왜 앞에다 붙였을꼬. 저녁 찬을 준비하려고 가지를 따는데 내 힘에 딸려온 줄기와 잎이 아니 몸까지 부르르 떤다. 화들짝 놀란 선녀벌레들이 사방으로 튄다. 튀는 것이 습성인가보다.

고운 날개를 펴고 하얀 꽃무리로 날아오른다. 날개옷 입은 선녀가 따로 없다. 내게는 해충이지만 올여름 저들은 찬란한 생을 누리고 있다. 하늘로 날아오르나 했는데 이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잎사귀에 내려앉아 피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삶에 아무리 큰 의미를 둔다 해도 누군가에게 해악이 된다면 엄연한 해충이다. 제 이익 챙기느라 남의 눈물을 보지 못해 나비가 아닌 벌레이다. 더 얄미운 것은 약 냄새를 피했다가 다시 와 들러붙는다. 사방에 내질러 놓은 애벌레는 또 얼마나 많을까. 결론은 공동의 적을 함께 박멸하는 수밖에 없다.

해충과의, 이념과의 전쟁이 다난한 8월이다. 어이없는 생트집이 불거진 시점이다. 이념은 달라도 해악이 되기보다는 더불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미사일과 사드의 이념전쟁으로 애먼 가슴에 불똥이 튄다. 우선순위를 가리는 민심은 된밥 먹고 얹힌 가슴처럼 답답하다. 저 해괴한 해충의 행동거지도 보아하니 의당 합세를 해야 한다는 트집인가?

이상도 하다. 잔뜩 엎드려 진액을 빨아대는 무리가 역겨운데 바로 옆 소나무에는 범접을 하지 못한다. 감히 그어놓은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반갑다. 반갑다. 기개 높은 소나무가 해충을 제어한다. 독야청청한 절개와 자존심이다. 해충 들끓는 무궁화 뒤에 철통 같은 방어벽이다.

중국꽃매미, 미국선녀벌레, 그 이름 내려놓아야 한다. 허울만 좋은 그 속을 파보면 소리장도笑裏藏刀가 따로 없다. 보름에 한 번으로 먹혀들지 않았으니 사흘거리로, 아니면 매일 한번이라도 저 극성스런 해충들의 주리를 틀어 놓아야겠다. 행여 그 무리로 인하여 소나무의 기개까지 흠으로 얼룩지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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