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58>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58>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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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

팍팍한 삶 무뎌진 인생 갈듯 '쓱쓱'
글·사진 김운기편집위원

▲ ㅁ가을 추수철을 맞아 농촌부부가 벼베기를 하면서 무뎌진 낫을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우고 있다. 농촌에서 칼이나 낫, 도끼 따위를 갈아 날을 세워 쓰는 돌을 '숫돌', 또는 여석(礪石), 지석(砥石), 지려(砥礪)라고 한다. 숫돌은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잘라 다듬어 칼이나 낫, 도끼등을 갈아서 날을 세워 사용하도록 만든 것으로 숫돌에 물을 붓고 쇠를 마찰시켜(갈아) 날을 세우는 도구다. 숫돌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대장간이고, 옛날 보리나 밀, 벼베기를 여러사람이 함께 할때는 많은 숫돌이 동원되어 낫을 가는 정경을 볼수가 있었다. 연하고 강한 쇠는 매끄러운 숫돌에서 갈고 무디고 거친 쇠는 일단 거친 숫돌에서 초벌을 간뒤 어느정도 날이 잡히면 매끄러운 숫돌로 옮겨 더욱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 칼 가는데 사용하던 숫돌

장수들이 전쟁에 나가 장칼·단검 갈때 사용

숫돌은 옛날 장수들이 전쟁을 벌일때 장칼을 갈기도 했고, 단검과 화살촉을 갈아서 사용했다.

그래서 쇠가 발견되고 쇠로 연모를 만들면서 필연적으로 숫돌이 사용되기 시작 됐을 것이다.

필자가 소년시절 목공일을 배우려고 목수를 찾아갔더니 마침 잘왔다는 듯이 반겨주더니 부드러운 숫돌에 대패날 가는 방법을 일러주고 무뎌진 대패날을 무더기로 가져다 주었다.

꾸중을 들어가며 하루종일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운것이 4개, 이튿날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 뒤 3일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뒤에 알려진 이야기로는 목수가 대패날 가는 것을 가장 기피하는 힘든 작업이라고 했다.

90년대 단양 어느 산골을 취재하러 가서 경험했던 일이다.농촌에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골짜기 다락논 벼베기를 하던 할아버지가 무뎌진 낫을 숫돌에 가느라 끙끙거리지 않는가. 보다못해 카메라를 벗어 놓고 낫 3자루를 갈아 드렸더니 할아버지는 도시에서 사진이나 찍는 젊은이가 낫가는 솜씨가 좋다고 칭찬하셨다. 소백산맥 기획 취재때 단양과 도계를 이루는 경북 단산면에서 큰도끼를 숫돌에 갈고 있는 화전민을 만났다.

큰도끼를 어디다 쓰려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큰나무를 베는데는 톱보다 도끼가 빠르지요"라고 답했다.

숫돌에 잘 갈은 도끼날은 면도날 같이 날카로워 힘좋게 내려 찍으면 큰나무도 금방 잘린다고 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화전민들은 톱이 없어도 나무를 베어다 통나무집(귀틀집)을 짓고 나무를 쪼개 지붕을 덮은 너와집도 거뜬히 지어 냈다고 한다.

톱은 여러개의 날을 '줄'이라고 하는 도구로 갈아 뽀족하게 세워야 해 시간적 노력이 많이 들지만 도끼는 숫돌에 잘 문지르기만 하면 날이 서니 도끼를 선호하는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옛날에 산에 오르면 벌채하는 도끼질 소리가 이산 저산을 메아리 쳤는데, 지금은 휘발유를 넣고 모터로 돌리는 기계톱이 개발되면서 '윙윙'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가 큰 진동으로 들려와 숲속의 소음공해가 되었다.

옛날 대갓집 부잣집들은 낫도 많지만 겨울나무를 쪼갤 도끼를 갈아야하고 잔치라도 벌어지면 장작을 부엌 천정까지 쌓아야 하므로 도끼의 쓰임이 더 많았다.

농기구의 기계화로 숫돌 사용 점차 줄어

그러나 지금 농촌은 이농현상으로 농사짓는 사람도 적고 농기구가 기계화(모터) 되어 숫돌을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특히 대장간도 기계화되어 숫돌대신 원형으로 된 '금강석'을 모터에 장착해 칼이나 낫 도끼 등을 갈아내는 세상이 되었다.

숫돌도 이제는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수 있고, 아이들은 뭐하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세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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