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는 것
덜어내는 것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팀장>
  • 승인 2016.08.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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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초벌한 소반을 앞에 두고 갑자기 어깨가 저려온다. 칠을 해야지 해야지 마음만 먹고는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그렇게 생각에만 멈춘다.

별도의 칠방이 없어서, 온도와 습도를 맞추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지난 행사 전 작업 후유증이 몸을 멈추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로 만든 소반 40개를 전통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옻칠을 하겠다고 상을 늘어놓고는 칠 작업에 들어섰다. 처음 몇 개는 정말 열심히 했건만 이내 체력이 떨어지고, 탈진하기 시작했다.

붓질하는 것보다 닦아내는 작업이 더 어려웠고 수고로움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애를 먹인 것은 해주반인데, 다리 부분에 조각이 너무 많아 구석구석 조그마한 홈의 면까지 닦아내는 작업은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칠이란 결국 닦아내는 작업이었다. 땀은 비 오듯 하고 팔은 움직이지 않고, 옻은 팔뚝 여기저기에 묻고…하나의 칠을 하면서 결국 닦아내는 시간은 몇 곱절 길어졌다.

닦아내고 갈아낸다는 것. 결국 이것이 칠 작업이었다.

더한다는 것이 덜어내는 작업이었던 것을 몸소 알았다. 좋은 칠을 위해선 결국 닦아내고 갈고, 칠하고, 또 닦아내고 갈아내는 작업의 연속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닦아낼걸, 갈아낼걸 왜 붓질을 하는 건지 원. 깊이 파려면 넓게 파고, 높이 올리려면 넓게 쌓아야 하는 것하고는 다른 접근이다. 붓이 지나간 면과 갈아낸 면은 다르고 갈아낸 면 위에 다시 더해져 있는 칠은 무조건 두껍게 올린 칠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칼을 만들 때 한 번에 주조하고 단조한 칼과 여러 번 접고 접어 단조를 한 접쇠와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결국 어깨근육은 파열되고 평생에 두 번은 안 걸린다는 대상포진을 오래도록 앓았지만 좋은 배움이었다. 그런데 지금서 몸이 안 움직이니 원. 끝내 완성을 못 보는구나.

작업의 과정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데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덜어내는 과정이다. 나무건 흙이건. 크던 작던 간에, 밖에서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만들고, 안쪽에서는 끊임없이, 가능하면 얇게 깎아내고 덜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터지고 뒤틀리고 모양이 변하게 된다.

어찌 보면 밖에서의 작업도 필요 없는 부분을 덜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감히 큰 것을 덜어내고, 섬세하게 조그마한 것까지 신중히 털어내는 과정, 결국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개념에 접근하는 것이 이것이 아닐까. 비워야 결국 채워나가는 것이니깐 말이다.

끊임없이 자세를 낮추고자 한다. 내려놓고, 비우고, 내가 높아지고,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태생부터 원초부터 난 가진 것이 없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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