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39>
궁보무사 <23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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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끓는 젊은 내가 저런 걸 보고 어찌 참으라고…
7.재수가 없으려니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그곳 성벽 근처는 또다시 이상한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소수성의 젊은 병사들과 어디에선가 찾아온 젊은 여인네들이 각각 짝을 지어가지고 환한 달이 비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나무 아래에서 혹은 성벽 아래 비좁은 틈바구니에서 남녀간의 사랑 놀음을 찐하게 벌이는 것이었다.

'하! 재수가 참 없으려니. 피 끓는 젊은 내가 저런 걸 보고 어찌 참으라고! 내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오근장 성주가 보내온 그 미녀를 맛있게 포식이라도 하고 올걸!'

방서는 잠시 이런 후회를 하긴 했지만, 그러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옮겼다.

방서는 완전히 숨을 죽인 채 바짝 다가가 성벽 사이사이의 삐죽 내밀어진 돌 모서리를 손으로 잡아가며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그 아래에서 발라당 누운 채 볼일을 한참 보고 있던 어느 젊은 여자의 눈과 성벽을 타고 오르는 방서의 두 눈이 서로 딱 마주쳤다.

방서는 '앗!'하는 소리가 튀어나오기 전에 재빨리 집게손가락으로 자기 입술 위에 갖다대 보였다.

어스름한 달밤이긴 했지만 그 여자는 뭔가 알아챈 듯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아니, 왜 그래"

자기 배 아래에 깔려있는 여자가 갑자기 이상스런 표정을 짓자 한참 작업중이던 병사는 고개를 힐끗 돌려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방서가 성벽을 타고 온전하게 안으로 들어가고 난 다음이었다.

소수성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방서는 횃불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경비 병사들의 배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자기들 딴엔 사리 성주님의 잠자리를 보다 안전하게 지켜준답시고 중요 부근을 핵심 기점으로 삼아 방사선상으로 넓게 경비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리성주가 지금 어디 어느 곳에 있음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침내 사리 성주가 있음직한 장소를 알아낸 방서는 환히 켜놓은 횃불의 위치와 경비 병사들이 왔다갔다거리는 시간 간격을 이용하여 목표 지점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드르렁 드르렁'

방서는 마침내 사리성주가 코를 골고 있는 어느 고급스러운 침실 바로 앞에까지 다다랐다.

아직 깊은 밤이 아님에도 벌써부터 저렇게 심히 코를 골며 잠자는 걸로 보아하니 사리 성주는 초저녁에 독한 술을 퍼마시고 일찌감치 잠에 취해 있는 듯 싶었다. 게다가 방서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사리성주의 호위무사라는 것들이 실력이 아닌 인물 위주로서 뽑힌 자들이기에 지금과 같은 이런 야간의 침입자를 철저하게 경계하거나 육감적으로 대뜸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방서는 마침내 요란히 코를 골며 침대 위에서 잠자는 사리 성주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곳에까지 다가갔다.

평소에는 휘황찬란한 비단옷에 번쩍거리는 관을 머리에 쓰고 다니는 사리 성주였으니 자기 딴에는 굉장한 미남인 줄로 알겠지만, 지금 저렇게 으스름한 달빛 아래 입을 딱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잠을 자고 있으니 여느 하잘 것없는 시골 촌늙은이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봐줄만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의 길고 흰 수염일진대 그것마저 조금 있으면 방서에 의해 닭털 뽑히듯이 뜯겨져 나갈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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