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38>
궁보무사 <238>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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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저러하니 소수성이 먹히고 말거라는 소문이 나돌지'
6.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죽었습니다. 아마도 자기가 살아있으면 비밀이 새어나오게 될까 두려웠나 봅니다."

괴정은 이미 창에 찔려 죽어버린 늙은 사내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흔들어 보며 말했다.

"하! 큰일이로구만! 만뢰산에서 숯장사 하던 자들이 백곡을 믿고 따라와 이제까지 든든하게 우리 팔결성을 지켜주었거늘, 그들이 몽땅 다 빠져 나간다면 대체 이를 어찌할꼬."

두릉이 한탄을 하듯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여봐라! 들어와서 시체를 당장 치워라. 놈이 우리 장수님께 함부로 덤벼들다가 내 창끝에 찔려 죽었느니라."

이윽고 냉정을 되찾은 괴정이 이렇게 큰소리로 외치자 밖에 있던 병사 서너 명이 후다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편, 외남 무사와 오근장 성주가 보내온 애첩을 밧줄로 한데 묶어놓고 빠져나간 총각무사 방서는 지금 부지런히 소수성을 향해 말 타고 달려가는 중이었다. 팔결성을 빠져나가기 전에 방서는 자기 후견인이나 다름없는 정북을 찾아가 날랜말 한 마리와 통행 허가를 받아낸 뒤 이렇게 급히 소수성 쪽으로 말 타고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육체적으로 보면 숫총각이 아닐 진대 내 어찌 색싯감으로 온전한 숫처녀를 원하겠는가. 그러나 모르고 얻었다면 모르되 오근장 성주의 손이 탄 줄을 빤히 알고 있는 여자를 어찌 내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까 다만 나를 지키고 있는 자(외남 무사)를 따돌리기 위한 방편으로 잠시 사용할 뿐이지. 그나저나 이번 기회에 그 싸가지 없는 소수성 사리성주 놈을 단단히 혼내줘야지. 내가 키 작고 못생긴 얼굴로 살아가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놈에게 그런 치욕을 당했었다니. 두고 봐라! 내가 반드시 놈의 수염을 통째로 뽑아내 주고 말 터이니.'

방서는 이렇게 속으로 계속 중얼거려가며 말을 몰아 마침내 소수성 근처에까지 다다랐다.

그곳에서 내려 말에게 물을 먹이고 풀을 뜯어먹게 한 후 방서는 날이 어서 어둡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사리성주에 의해 단지 키가 작고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무사 시험조차 치르지도 못한 채 소수성에서 쫓겨나올 때, 그와 똑같은 꼴을 당했던 어느 누가 분풀이 겸해서 이렇게 내뱉었던 말을 방서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소수성은 외견상으로 굉장히 높고 단단해 보이지만 남쪽 문에서 서쪽 방향으로 한 서너 마장쯤 되는 곳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바로 그곳에서 경비병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물건들이나 사람들을 뇌물 받아먹고 몰래 들여보내 준다고 하거든. 게다가 그곳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남녀 간의 불장난이 버젓하게 벌어진다지. 어휴! 지금 당장 성질 같아서는 한밤중에 몰래 그곳을 타고 넘어들어가 저 잘난 척하는 사리성주 놈의 족제비 같은 낯짝 위에 주먹이라도 된통 한 방 안겨주었으면 참 좋으련만.'

소수성의 남쪽 부근 바로 그 지점으로 방서가 몰래 찾아가 보니 역시 문제가 있어 보일만했다. 저렇게 외진 성벽 아래 땅 바닥이 사람 발걸음으로 딱딱하게 다져지고 반질거리고 있으니 이건 보나마나 아니겠는가

방서는 근처 숲 속 나무 뒤에 적당히 몸을 숨기고는 자기가 몰래 타넘어 들어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가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도중에도, 그곳 성벽 부근을 지키는 병사들은 뇌물을 받아먹고 사람들과 물건들을 성 안으로 몰래 들여보내 주는 걸 꽤 여러차례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시장에서 물건들을 떳떳이 팔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하아! 사정이 저러하니 소수성이 언제 어느 누구에게 먹히고 말거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지. 게다가 사리성주는 무사들마저 실력이 아닌 인물 위주로 뽑고 있으니.'

방서는 시원하다는 생각에 앞서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은 듯 빈 입맛을 쩝쩝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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