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새
어미 새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6.08.0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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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연일 불볕더위가 앙탈을 부린다. 폭염에 지친 몸은 엿가락처럼 늘어져 천근만근이다. 시원한 계곡의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해보리라는 생각에 이른 아침 화양동으로 차를 몰았다.

계곡으로 내려가니 초록 숲 사이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바위틈을 흐르는 물소리가 더위를 잊게 한다. 아름드리 참나무 밑의 너럭바위에 자리를 폈다. 물밑이 맑아서 송사리 떼가 한유하게 유영하는 모습이 눈에 든다. 이참에 바위에 벌러덩 누워본다. 딴 세상이다. 누워서 듣는 계곡 물소리는 한 모금 청량음료보다 낫고 속세에 더럽혀진 귀를 씻어주는 듯 상쾌하다.

그때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물가에 앉는다. 깨알같이 작은 눈에 무엇이 보이는지 화살보다 빠르게 먹잇감을 낚아채고 황급히 날아갔다. 숨죽여 바라보니 조막만한 잿빛 새는 참나무 가지 위에 둥지를 틀었나 보다. 이번에는 잠시 주변을 살피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물가에 날아와 먹이를 구해 둥지로 날아올랐다. 어쩌면 저리도 가벼운 몸짓인가. 숲에 어둠이 내릴 때까지 직선과 곡선을 그리며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둥지 안이 궁금하다. 어미 새가 허공을 헤매는 사이 너럭바위에 까치발을 하고 둥지 안을 훔쳐보았다. 겨우 솜털을 벗은 듯한 새끼 한 마리가 연신 입을 쩍쩍 벌리고 있다. 배가 고픈 모양이다. 어미 새는 둥지에 있던 새끼 입에 넣어줄 먹이를 나르기 위해 쉴 새 없이 무한 사랑의 날갯짓을 했던 것이다.

내가 자랄 때 친정어머니는 나의 어미 새였다. 나 또한 어머니가 연탄불에 정성껏 지어주신 따뜻한 밥을 먹고 푸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도시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다. 주말이면 집에 오는 딸을 위해 어머니는 종일 부엌에서 서성거리셨다. 밥이 보약이라며 딸이 좋아하는 반찬이랑 금방 지은 밥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고등어를 발라 수저 위에 올려주시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배가 부르다며 드시지 않으셨다. 게 눈 감추듯 먹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날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찬밥 한 덩이로 끼니를 때우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뿐인가. 나는 결혼 후에도 내손으로 김장 한번 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어머니는 해마다 김치를 담가 큰 고무 통에 넣어 소화물로 부쳐주셨다. 게다가 힘든 이불빨래마저 어머니의 손을 빌렸었다. 어머니 고생하는 건 안중에도 없던 철부지였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당신 삶은 오직 자식들뿐, 어머니의 무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돌아보면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는 어머니가 등 뒤에 계셨다. 그것이 당연한 줄로 알았던 자식은 이제야 후회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어머니께 보답할 수 없어 애달프다.

계곡에서 더위를 쫓고 내려오면 길, 자연에게서 세상 이치를 깨닫는다. 계곡을 내려오는 동안 어미 새의 날갯짓이 환영처럼 눈에 어른거린다. 생전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주말에는 서울에 있는 딸이 내려온다. 엄마가 해 주는 밥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때론 힘이 들지만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며 정담을 나눌 것이다. 부모에게는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입에 맛난 음식 해 먹이는 일이 최고의 행복이지 싶다.

어미 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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