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여행
아주 짧은 여행
  • 박경희<수필가>
  • 승인 2016.07.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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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박경희

여행은 우리 삶의 단편이며 프리즘이다. 그 짧고도 한정된 며칠간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집약된 인생을 들여다보고 그 각각의 생이 반추하는 여러 의미를 깨닫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난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질적 몽상갗였다. 가족들이 늦은 저녁을 먹은 후, 마루 평상에 앉아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수박을 갈라먹고 모기를 쫓을 그 현실적인 시간에조차도 유독 나 혼자 사랑방 구들을 짊어지고 들어앉아 모기장 달린 창문 열어놓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고립된 몽상에 쓸쓸히 젖곤 했었다.

허구한 날 사무실에서 죽은 박제인형처럼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서해안 안면도 앞바다에 있는 롯데오션캐슬로 아주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위치한 리조트인 롯데오션캐슬은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데다, 호주의 투명한 모래사장을 연상케 한다는 그곳 안면도의 바닷가 전경은 의외로 제법 괜찮았다.

홍성을 지나고 안면도에 이르니 왼쪽으로 휴양림이 펼쳐져 있어 간만에 수목들이 내뿜는 싱그러운 기운들을 온몸으로 한껏 흡입했다. 덕분에 한층 행복했다.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테라스 문을 열어젖히니 이건 호주의 여느 해안가보다도 더 말끔한 해안 휴양지가 베란다 밖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상긋한 바다비린내와 즐비한 야자수 비슷한 나무들, 파도에 철썩철썩 밀려드는 하얀 거품이 열정적인 몸짓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물빛까지도 꽤나 짙푸르렀다.

어디선가 코끝을 파고드는 조개구이냄새, 1층에는 각종 약재사우나탕과 노천 사우나가 있었다. 사실 난 여행 시에 온천욕을 그리 즐기지는 않으나 한 바퀴 돌아보니 있는 자들의 물쓰듯 쓰는 돈. 돈 세상이다. 이 세상은….

예정대로 조개구이집으로 들어갔다. 키조개, 소라, 맛, 모시조개, 대합, 백합 등 각종 조개를 구워먹고 이슬이 한 병을 둘이 나눠 마셨다. 마음으로 읽는 시집 한 권을 꺼내 고향과 가난과 어머니가 주제를 이루는 가슴으로 읽는 시, 느낌으로 오는 시로 무거운 마음을 모두 비워냈다. 그리고 조개구이집을 나와 칠흑같이 캄캄한 안면도 밤바다를 거닐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지만 그지없이 시원했다. 난 왜 이리 밤바람이 좋은 걸까. 바람이 부는 곳을 향해 자꾸 고개를 돌린다. 그 밤이 지나도록 밤바다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히는 동안 많은 상념이 오고 간다. 수평선 너머 저리도 광활하게 비어 있는 공간이 있기에 때로는 슬픔도, 고통도 삭여주어 살아감에 힘을 얻게 되는 모양이다.

무엇이든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있건만 어느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느 사람에게는 참으로 특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 사람의 안목을 넓혀주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됨은 물론, 인간적으로 한 인간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데는 여행만 한 것이 없다.

여행! 누군가에겐 삶의 짐을 덜기 위해, 누군가에겐 새로운 희망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에겐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누군가에겐 타인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낯섦으로 향하는 일탈. 그렇기에 그들이 향하는 방향도 방식도 모두 제각각이며 낯섦, 호기심, 예측 불가능함은 여행의 기대감과 즐거움을 높여준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식구들 먹을 저녁반찬거리를 만들어 식탁에 차려 놓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 이틀을 꼬박 집을 비웠어도 싫은 내색 안 하고 묵묵히 자기 자리 지켜준 가족들이 더할 수 없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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