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37>
궁보무사 <237>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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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정이라는 분이 계시다면 그 분만 남아주십시오"
5.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백곡과 나는 일찍이 이런 약속을 남몰래 했었느니라. 생사가 걸릴 만큼 아주 중요한 말을 자기 대신 전해주려 하는 자를 피차 보낼 경우 그 사람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를 크게 망신 주는 말을 먼저 꺼내게 하자고. 아! 이제는 네가 정말로 백곡이 내게 보낸 자가 맞는지를 확인해보자꾸나. 너는 대체 어디에 사는 누구더냐"

"쥐새끼가 알을 까든 말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옵니까"

늙은 사내가 두 눈을 껌뻑거리며 두릉에게 동문서답하듯이 다시 말했다.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두릉의 낯빛이 크게 어두워졌다.

"으음. 보아하니 대단히 심각한 내용일 것 같구나. 어서 말하라."

두릉이 그를 다그쳐댔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잠시 물리쳐 주십시오."

늙은 사내가 다시 말했다.

"모두 물러가 있어라."

두릉의 명령에 모두들 막사 밖으로 나가려하자 늙은 사내가 큰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잠깐! 여기 괴정이라는 분이 혹시 계시다면 그 분만 남아주십시오."

막사 밖으로 막 나가려던 괴정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다가왔다.

"자, 어서 말하라. 백곡이 내게 직접 전하고자 하는 말을."

두릉이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늙은 사내에게 물었다.

"장군님의 뜻을 거역함을 용서하시옵소서. 저는 휘하 부대를 그대로 놔둔 채 동지들과 함께 떠나 제 고향 만뢰산 속으로 들어갈 것이옵니다. 장수님의 은덕(隱德)을 크게 입었던 제가 이런 일을 당하면 죽음으로서 보답해드려야 마땅하겠사오나 그리하게 되면 장수님의 입장이 더욱더 난처해질 것만 같기에 부득이 제가 이런 방법을 취하는 것이오니 널리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장수님!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늙은 사내는 생긴 모습과는 전혀 달리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꽤나 많이 연습을 해온 듯 거침없이 줄줄 말을 마쳤다.

"으음음."

두릉은 뭔가 못 마땅한 듯 이맛살을 잠시 찌푸리고 있다가 괴정에게 다시 물었다.

"이래저래 걱정이 되는구만. 백곡이 우리 팔결성 안으로 즉시 들어오라는 성주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군대를 내팽개친 채 멀리 달아나버렸다면. 나는 학소를 몰래 보내 될수만 있다면 우리 경계와 맞닿은 금왕의 군대와 작은 분쟁을 일으켜 대치하는 척하라 일렀거늘."

"기왕지사 이렇게 된거 백곡이 무사히 만뢰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가 시간을 벌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성주님께서는 틀림없이 외북 장수의 휘하 부대에게 백곡의 뒤를 추격하여 죽이라 명하실 것입니다."

괴정이 바싹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쨌든 백곡의 말을 애써 전하러 온 이 자를 잘 대접하여."

두릉이 이렇게 말을 하며 고개를 막 돌리려는 순간, 그 늙은 사내는 반듯이 세워놓은 날카로운 창끝 위로 자기 몸을 덮쳐 버렸다. 두릉과 괴정이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늙은 사내의 배는 창으로 대번에 꿰어졌고 이어서 시뻘건 피가 상처 부위로 줄줄 흘러나왔다.

"아니, 이 자가 갑자기 왜 이러느냐"

두릉이 깜짝 놀라 두 눈을 번쩍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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