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35>
궁보무사 <23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1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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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사는 처녀가 어떻게 저런 것들을 비축해 놓았을까"
3. 재수가 없으려니

그러자 강치 일행은 혼비백산하여 두 무릎을 얼른 꿇고 두 손을 위로 바짝 치켜 올린 채 정신없이 싹싹 빌어댔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이때 사천이 내덕의 귀에다 대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기왕이면 저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에게 일을 좀 시켜먹는 게 어때"

"아! 그러니까 놈들에게 저 동굴에서 꺼낸 물건들을 우리 마차 위에 죄다 싣도록 부려먹자 이말이지 으흐흐흐 그거 좋은 생각이로구만."

내덕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잠시 끄덕거리다가 강치 일행을 향해 갑자기 크게 외쳤다.

"네 놈들을 당장 죽여서 산속의 나무 거름이나 만들어놓고 갈까 했다만 그래도 네놈들의 인생이 가엾게 보여 목숨만큼은 살려줄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네놈들은 동굴 안에서 꺼낸 것들을 우리가 가져온 저 빈수레 위에 몽땅 옮겨놓도록 하여라."

강치 일행은 내덕의 말에 너무 어이가 없는 듯 잠시 아무 말 못한 채 얼굴만 서로 쳐다보았다.

아니, 죽도록 고생해서 벌어놓은 물건들을 도둑놈 소리 들어가며 그냥 빼앗기는 것만으로도 억울할 판인데 그걸 나르는 일까지 시켜먹으려 한다니.

"저어, 솔직히 지금 저희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옵니다. 그러니 제발."

강치는 머리를 조아려가며 아주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을 했지만 내덕은 의외로 냉정했다.

"이놈! 어디서 감히 말대답이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까라면 무조건 깔 것이지! 여봐라! 놈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라!"

내덕이 외치자 옆에 있던 수동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죽 채찍을 번쩍 들어올렸다.

"으아악!"

"아이고! 하, 하겠습니다."

"그, 그러니, 제발!"

강치 일행은 기겁을 하며 물건들을 내덕 일행이 가져온 빈수레 위로 나르기 시작했다.

"으으음, 그런데 참 이상하구만. 산속에 사는 처녀가 어떻게 저런 고급 비단이며 마포 따위 같은 것들을 많이 비축해 놓았을까 약재나 털가죽 같은 건 숫제 보이지도 않고."

사천이 빈 수레 위에 가득가득 쌓아지는 물건들을 보며 이상한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허허. 사람도 별 걱정을. 사냥꾼 처녀가 짐승 가죽을 시장에 내다 팔아 비단을 사서 저렇게 쌓아둘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하하하."

내덕이 유쾌하게 웃으며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숨을 학학거리고 땀을 삐질 삐질 흘려가며 동굴 안팎에 있던 물건들을 남김없이 모두 마차 위에 옮겨놓은 강치 일행에게 숨 돌릴 여유조차 주지를 않고 내덕은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자기 앞에 두 무릎을 꿇게 했다.

그리고는 자기 딴엔 아주 점잖은 목소리로, '오늘 당장 굶어 죽을지언정 남의 물건에 탐을 내어서는 절대로 아니 된다. 너희들이 나중에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건 바로 내덕! 한벌성에 있는 내덕인 줄로 알아라!'며 한참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이들에게 어쨌든 어려운 동굴 입구를 찾아내주어 고맙다는 의미에선지 가장 허름하고 값 싼 마사 두루마리 한 개를 달랑 던져주고는 내덕과 사천은 부하들과 가득 채워진 마차를 이끌고 아까 왔던 길로 기분 좋게 돌아가 버렸다.

"어휴! 저, 저 날강도 같은 놈들!"

"우리가 우리 물건을 빼앗긴 것만 해도 크게 억울할 판인데 일까지 부려먹어"

"도대체 저것들이 인간이여 뭐여"

강치 일행은 내덕 일행이 멀리 떠난 후에도 그들을 향해 온갖 악다구니를 마구 퍼부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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