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48>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48>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1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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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태양신의 후예들

태양신이 창조한 안데스의 찬란한 '잉카문명'

악귀들은 나가라. 병과 재앙, 불운, 위험은 이 땅에서 모두 물러가라!"

'잉카인'은 지금의 페루에 속한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 살았던 민족이다. '잉카문명'이라고 하는 뛰어난 문명을 이룬 것과는 달리 문자(文字)가 없던 잉카인들은 색끈으로 매듭을 지어 의사를 소통하고 기록을 남겼다. 전해야 할 소식이나 이야기는 통째로 외워 전달해야만 했다. 먼 곳에 소식을 전할 때는 내용을 외운 전달자들이 이어달리기로 연결하여 전했다고 한다. 주자는 약 1km를 달려가 다음 주자에게 외운 내용을 말(言)로 전했는데,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빠르게 전달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소식은 하루에 240km 정도씩 릴레이로 전해졌다고 하는데, 별다른 교통수단도 없던 험준한 안데스의 산악지역에서 이 정도 거리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소식 전달자들은 황제를 위한 배달꾼 역할도 했다. 어떤 황제는 해산물을 너무 좋아해서 전달자들이 어촌에서 난 해산물을 날마다 배달해야 했는데, 해산물이 싱싱하지 않으면 이들을 모두 처형했다고 한다. 잉카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구전(口傳)되고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해진다. '크리스토발 데 몰리나'가 1573년에 쓴 '잉카인의 이야기와 의식들'이라는 글은 잉카인들의 삶과 신화를 연결 지어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태양신 축제에 대한 기록도 몰리나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드디어 비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믐날부터 축제가 시작될 예정이니 모든 잉카인들은 시내의 사원 앞으로 모여 주십시오. 하지만, 귀의 살갗을 벗긴 이방인과 불구자, 불행을 당한 사람들은 축제에 참가할 수 없으니 시내 밖으로 나가 주기 바랍니다." 잉카인들은 우기(雨期)가 시작되는 8월에 '시투아'라는 축제를 전국적으로 열었다. 우기에 축제를 벌이는 이유는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습도가 높아지면 많은 질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잉카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과 정복한 모든 땅에서 질병이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고 태양신에게 기원했다. 축제 준비가 끝나면 선임 제사장은 태양신이 모든 질병과 잡귀를 몰아낼 수 있도록 '시투아' 의식을 거행하라고 선포한다.

제사장의 선포가 끝나면 무장을 한 병사들이 마치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창을 들고 사원앞 광장으로 들어온다. 광장의 중앙에는 분수처럼 생긴 황금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항아리 주변으로 400명의 전사가 정렬한다. 100명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인 동쪽으로, 100명은 서쪽을 향한다. 다른 100명은 북쪽을, 나머지 100명은 남쪽을 향해 선다. 태양의 사원에서 온 사람들이 광장에 도착하는 순간, 그들은 이렇게 소리친다.

"악귀들은 나가라. 병과 재앙, 불운, 위험은 이 땅에서 모두 물러가라!"

전사들이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전진하면서 소리를 지르면 잉카인들은 밖에 있는 사람에게 그 소리를 전달한다. 가장 마지막에 전달받는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강으로 달려가 목욕을 하면 악귀를 쫓는 소리지르기 행사가 끝이 난다.

강에 들어가 몸을 씻는 이유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악귀와 불행도 강물과 함께 바다로 흘러가 버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목욕을 마친 사람들은 짚으로 커다란 횃불을 만들어 주고받으며 놀았다. 축제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미리 준비해 놓은 거친 옥수수 죽을 얼굴과 옷, 음식, 집안 곳곳에 바르며 축원했다.

"오늘만은 아무리 슬픈 일이 있더라도 축제를 즐기기 바랍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배불리 먹고 마시기 바랍니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기 바랍니다."

잉카인들은 이날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1년 내내 다투거나, 불행한 일들이 이어지고 악귀에게 시달린다고 믿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왕과 왕비, 귀족들이 태양신과 창조신, 천둥신의 성상에게 경의를 표한 다음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가무를 즐겼다. 사람들은 귀하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 신들이 모셔진 사원으로 가져와 함께 먹고 즐겼다.

다음 날에도 사람들은 신분과 계급 순서에 따라 광장의 제사의식에 참여했다. 이날은 짐승을 잡아 태양신, 창조신, 천둥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한 번의 제사에 10만마리 이상의 동물이 제물로 바쳐졌다고 한다. 이때 제물로 바쳐진 동물들은 반점이나 얼룩이 전혀 없어야 하고, 태어나서 한 번도 털을 깎은 적이 없어야 했다. 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의 조건과 매우 유사하다.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거행할 때, 선임 제사장은 커다란 황금쟁반에 담은 옥수수 죽을 양의 피와 함께 뿌린 다음,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옥수수 죽은 경건한 마음과 태도로 먹어야 한다. 죄악을 품고 먹는 자나 표리부동한 마음으로 먹는 자는 우리의 아버지 태양신께서 보고 계시다 가혹한 벌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진실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자에게는 태양신이 보살펴 주사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고 행복한 한해가 되게 할 것이며,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잉카인들을 태양신의 후예라고 부르는 것은 창조주를 중시하는 다른 문화권과 달리 태양신을 최고의 신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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