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단상
결혼기념일 단상
  • 박경희<수필가>
  • 승인 2016.06.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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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박경희

결혼 30주년으로 진주 혼식을 맞이하는 날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흘렀다. 흐르는 물 같은 세월이라더니 결혼식을 올린 게 엊그제 같은데 30년 세월이 바람같이 흘렀다. 아무렴,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인생은 그저 바람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무안하고도 부끄러운 제목으로 내 나이와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이제는 불혹과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세월로 접어들었으니 그저 귀를 열고 남들의 얘기나 잘 듣는 것이 어울릴 터이건만….

중국 명나라 말기의 독설가 이지(李贄)는 ‘분서(焚書)’ 라는 책에서 “나이 오십 이전에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다”라고 고백했다.

실상 고백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깝게 들린다.

아마도 그는 오십 번째 생일에 과감히 개의 삶을 청산하고 인간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하기야 인간으로 났어도 동물이나 기계처럼 사는 인생들이 주위에 허다하지 않은가. 내가 이리저리 기웃거린 길 역시 그 비슷한 그림이었을 터이다.

어느 나이가 되면 누구나 늙게 마련이다. 늙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화장하여 남들의 눈에 젊게 보일 수는 있어도 젊어질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다.

거리에서나 어디에서 종종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점점 더 모친의 모습을 닮아 간다는 사실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거리를 걷다가 어느 가게 앞의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아! 하고 탄성을 발하기도 했다. 내 모습에서 모친의 모습을 보며 이상한 반가움을 가슴 가득 안다가 그것이 실은 그리움이어서 잠시 눈물을 짓기도 했다.

내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점점 더 모친의 모습을 닮아 간다는 사실에서 묘한 위안을 얻기도 한다. 모친의 모습만을 닮아 가는 것이 아니라 심성도 닮아 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옛날 보통학교를 중퇴한 학력밖에 없는 분이었으나 집안 식구들이나 이웃들 사이에서 사람을 다루는 재능은 매우 뛰어난 분이어서 배울 것이 많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요즘 주변의 이런저런 병고자리와 죽음자리를 접할 때마다, 여기저기로 문상을 갈 때마다 모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자연발생적으로 떠오르곤 하는 모친의 그 모습은 어느덧 내가 소망하는 하나의 ‘목표’ 같은 것으로 내 가슴에 자리하게 되었다.

초로의 세월로 들어서고 보니 인생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성당에서 미사 때 신부님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기도 한데 정말 인생 별거 아니다. 세월은 바람같이 흐르고 지나고 보면 더욱 쏜살 같고 그래서 더더욱 덧없는 것이 인생이다.

한때는 초조감이며 위기의식 같은 것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그것에도 초연하지 싶다. 아직 초로이니 시간은 좀 남아 있지만 인생 별거 아니듯이 그것 또한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내 인생도 반백년 넘게 흘러 회색빛 그림자 머무는 나이, 어떻게 살아야 옳게 사는 것일까. ‘곱게 늙는 것’과 ‘추하게 늙는 것’ 노년에 보기 좋은 사람은 열에 하나밖에 없으니 곱게 늙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분별할 줄 아는 40대, 하늘의 이치를 조금은 아는 50대, 석양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60대, 그 세계를 넘나들며 미래, 과거, 현재를 초월한 세계로 만나면서 작은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나이 들어가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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