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마을
시가 있는 마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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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부 림
손 택 수

딴은 꽃가루 날리고 꽃봉오리 터지는 날

물고기들이라고 뭍으로

꽃놀이 오지 말란 법 없겠지

남해는 나무그늘로 물고기를 낚는다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짙은 그늘 물 위에 드리우고

그물을 끌어당기듯, 바다로 흰 우듬지에 잔뜩 힘을 주면

푸조나무 이팝나무 꽃이 때맞춰 떨어져내린다

꽃냄새에 취한 물고기들 영영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말채나무 박쥐나무 꽃도 덩달아 떨어져내린다

木그늘로 너희들 목에 내린 그늘이라도 풀어라

남해 삼동 촘촘한 그늘 가득 퍼득대는 물고기를

잎잎이 어깨에 메고 우뚝 선 어부림

꽃향기는 수평선 너머로도 가고 심해로도 가서

낚싯바늘처럼 단숨에 아가미를 꿰뚫는다

꽃가루 날리고 꽃봉오리 터지고 청미래 댕댕이 철썩철썩

파도소리를 흉내내며 뒤척이는 숲

날이 저물면 남해는 나무들도 집어등을 켜 든다

시집 '목련 전차'(창비)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외로운 물고기는 나무 그늘이 그리운 법이다. 꽃잎 띄우는 숲은 물고기의 젖은 그늘을 말려보라고 수런거린다. 숲의 향기가 수평선 넘어 날아가 깊은 바다까지 스며든다. 사람이 물고기 잡으려고 숲을 이루었지만, 물고기 쉬라고 하는 착한 마음이 향긋하다. 집어등을 켜지만 결코 잡으려 하지 않는 나무의 마음도 어룽대는 남해 물건리의 그늘 깊은 숲이다.

※어부림(魚付林)-물고기를 유도할 목적으로 물가에 나무를 심어 이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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