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걸이와 덤
마수걸이와 덤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06.0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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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최명임<수필가>

삶은 시작의 두근거림으로 이루어가고 불꽃 같은 희망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그 결과로 횡재 같은 덤, 덤 같은 횡재를 손에 쥐고 쾌재를 부른다. 때로 시작의 오류와 고달픔은 좌절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탁월한 선택은 팔자 바꿈을 하기도 한다. 결과를 보고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데 사람의 일이라 길고 짧은 것은 끝에 가서 대보아야 안다. 재물로 따지자면 돌고 도는 물건이요, 사람의 마음으로 따져도 초심으로 머무르기에 알맞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어버리고 오만방자하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기도 하지 않는가. 숱하게 성공 신화를 보지만 때로 역한 냄새가 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삶의 진정한 성공과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풍진風塵세상에서는 그리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미욱한 나처럼.

장터에 가면 무던한 세상을 본다. 언뜻 보면 큰 세상의 축소판 같고 장터를 일러 난장판이라 하지만 나는 삶의 따스한 언어를 듣는다. 촌로의 작은 소망인 푸성귀 한 자루가 있고, 하룻밤에 기와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꿈을 꾸는 이들의 절실한 시작이 있다. 아귀다툼하는 모리배보다는 작은 것에 만족하고 몇백 원의 이익에 웃고 우는 아낙과 아범이 있어서 좋다.

고향을 맛본다.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것에 대한 공감대일까. 진부한 듯 보이지만 애정이 가고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된장국처럼 소박한 냄새가 난다. 귀소 본능의 출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고향은 이제 추상적이고 감정 이입된 피사체에 불과하다. 부쩍 과거로의 퇴행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그런 내게 난장은 향수를 파는 곳이다.

촌스러워서 정겹고 재미있는 풍경도 많다. 맛보기로 발길 붙잡는 엿장수가 있고 떡장수, 두부장수, 바퀴벌레약 장수, 닭집에서 홰치는 소리, 뻥이요, 쿵쾅거리는 맥박소리가 허벌나게 들린다. 이 역동적 삶의 현장에 들어서면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로 살맛이 난다. 인생살이 팍팍하고 재미없을 때 시장을 가 보라던 누군가도 덤으로 희망을 얻어 갔을까.

나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마수걸이는 불문율 같은 것이다. 흥정을 하다가 돌아서는데 된통 싫은 소리를 들었다.

“사지도 않을 걸 값은 왜 물어보느냐고, 재수 없게 마수도 못했는데?.”

말 한마디에 정 나는 것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걷다가 곰곰 생각하니 서운함은 내 입장이다. 그에게 마수걸이는 느낌 좋은 시작일터, 서운함을 놓았다.

마수걸이의 위력은 대단하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시작의 힘은 어떤 이의 하루를, 어떤 이의 인생까지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허나 장터에도 변수가 있듯 인생 또한 명쾌한 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덤을 달라고 하면 칼같이 자르는 이가 있다. 물건과 가격의 균형을 맞춰놓고 소신껏 장사를 할 테고 삶도 그러려니 한다. 덜 놓고 덤으로 인심을 쓰는 이도 있다. 애교로 보이는 것은 상대를 즐겁게 하는 유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듬뿍 건네는 이도 있다. 베풀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사람일 게다.

마수걸이는 느낌 좋은 시작이요, 덤은 횡재 같은 즐거움이다.

돌아보니 내 인생도 마수걸이와 덤으로 점철된 시간의 꼼수였다. 신은 내 시작을 알몸뚱이로 던져놓고 때맞추어 덤을 주시지 않았는가. 나를 위해 있는 것은 모두가 덤이다.

향수를 파는 장터에 가면 마수걸이와 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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