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에 대하여
말(言)에 대하여
  • 박경희<수필가>
  • 승인 2016.05.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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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박경희

때로는 진실이 더 추할 수가 있다. 어디까지나 비밀에 부쳐진 것들은 최소한 추한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가식이나 위선하고는 좀 다르다. 굳이 숨기거나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발설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음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말수는 점점 더 줄여야 자신도 타인도 덜 피곤하다.

학교 다닐 때 말이 없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 그 친구는 내 앞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하고도 듣는 내가 피곤해하리라는 배려는 조금도 할 줄 모르는 ‘수다쟁이’가 되어버렸다. 그럴 땐 흔히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켜기도 하며 눈치를 주곤 하는데, 그런 내게 몸이 부실해서 그렇다느니 밥 좀 많이 먹으라느니 하며 여전히 수다다. 애교 있고 밝은 것과 수다스러운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이 많아지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다가 아무도 듣지 않는 자신의 말을 오직 혼자 연설처럼 하게 되며 그것처럼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때로는 수다스런 중년여자를 만나는 일보다는 말수가 눈에 띄게 적은 남자를 만나고 있을 때가 훨씬 더 평화롭게 느껴지곤 한다.

남자들은 내게 무언가를 꼬치꼬치 캐묻는 법도 없고, 자기생활을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다 내게 보고하는 불필요한 일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말 시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차라리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니 그러한 무덤덤한 남자들과 만나 대화하는 편이 더 낫다. 그런 남자류 중의 하나인 남편이라는 존재가 차라리 여자 친구들이나 동네아줌마, 언니들과의 대화 때보다도 훨씬 더 평화로울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자꾸 무덤덤한 상태가 좋아진다. 글로 쓰라면 열 장은 족히 쓸 일도 말로 하라면 할 말이 싹 사라진다. 지금도 사람들은 나보고 그런다. 그렇게 글을 쓰려면 글을 준비하기 위한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다 투자하느냐고,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느냐고….

내 글은 그리 많은 정보나 자료를 필요로 하는 대단한 글이 아니므로 일기나 독후감이나 음악감상문 정도로서 한편의 글을 쓰는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냥 어떤 것에 대해서 오늘 글을 써야겠다고 불현듯 생각이 들면 좀이 쑤셔서 참지 못하고 곧바로 글을 쓰는 데 쓰고 나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아마도 다른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로 풀어야 할 ‘입질’을 난 ‘글질’로 푸나 보다. 그런 탓인지, 난 동네 아줌마들을 만나 수다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자면 그다지 할 말이 별로 없다. 별로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 대화가 지루하다. 남편자랑, 은근한 생색, 자기 잘났다는 이야기 등을 한참 고개를 끄떡거리고 들어주다 보면 순간적으로 권태로움을 느낀다.

설령 자기가 느끼기에 다소의 비밀이 감지되거나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느껴지더라도 일일이 들추고 싶고 캐고 싶더라도 세상일은 가끔은 조용히 덮어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거다. 그것은 비리를 덮어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고수하기 위해서이다. 지나친 정의감은 때로는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거나 형사가 심문하는 식의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다’라는 말이 부인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모르는가? 아무리 공정한 사람이라도 인간은 신처럼 공정할 수는 없다. 인간의 탈을 쓴 이상은, 남이 한 건 있을 수 없는 짓이고 자신이 한 건 아름답고 가슴 저린 추억이었다고 생각되는 본능이야말로 인간 누구에게나 어쩔 수가 없는 진리이다. 어쨌든 남자든 여자든 말수는 적을수록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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