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거부권 버저비터'에 野 '20대 국회서 보자' 강경
朴대통령 '거부권 버저비터'에 野 '20대 국회서 보자' 강경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6.05.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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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 청문회 개최 요건을 완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재의를 요구(거부권 행사)하면서 야당이 20대 국회에서 이를 재의결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나섰다. 19대 국회에서는 재의결을 위한 본회의조차 열 수 없게 한 박 대통령의 절묘한 '택일'에 야당은 20대 국회로 이월해 재의결하면 된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27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법안이 아닌 현안을 위한 청문회는 행정부에 대한 새 통제수단이므로 헌법이 정한 권력 분립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게 이유였다. 아프리카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전자결재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이번 거부권 행사를 놓고 여소야대가 된 20대 국회를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시각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 이후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의 청와대 회동 등을 계기로 협치(協治)에 나서는 듯했지만 결국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 것이다. 이번에 밀리면 자칫 조기 '레임덕(집권 후반기 권력누수)'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간 국회에 통과를 촉구해온 파견근로법 등 노동 개혁 4법, 서비스산업발전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이 폐기된 데 대한 박 대통령의 불만이 이번 거부권 행사로 표출된 것이란 해석도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거부권 행사 시점이다.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려면 임시국회를 소집하고 본회의를 열어야 하는데 '임시회의 집회요구가 있을 때에는 의장은 집회기일 3일전에 공고한다'는 국회법 때문에 19대 국회 임기종료일인 29일까지 임시국회 소집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법안 재의결이 불가능한 시점을 택해 재의를 요청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법안 재의결 투표 시 새누리당 내 비박계의 이탈표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 갈등 속에 자칫 비박계가 야당과 보조를 맞출 경우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을 위한 정족수인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넘기게 돼 국회법 개정안이 법률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려 끝에 거부권이 행사되자 때맞춰 새누리당은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다른 계류 법안들처럼 임기만료에 따라 폐기됐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총선 패배와 협치 공세, 국회법 개정안 공포 압박 등으로 야당의 기세에 밀리던 박 대통령이 장거리 역전 버저비터(농구경기에서 한쿼터 또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신호음과 동시에 득점하는 것)를 성공시켰다는 비유도 하고 있다.

이에 야당은 직전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인 만큼 이번 개정안도 새로 열리는 국회에서 다룰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가 국회에 재의결을 위한 최소한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재의를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권한을 남용했으므로 이 법안을 가결 전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임기만료에 따른 법안 폐기 여부가 쟁점이 돼 여야 합의가 어려워진 탓에 본회의 상정을 장담하기 어렵다. 본회의 법안 상정 권한을 가진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제1당인 더민주가 맡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더민주가 국회법 개정안 재의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할 경우 새누리당이 현재 진행 중인 원(院)구성 협상에서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재발의하는 방안도 있지만 소관 상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 표결 처리까지 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최근 권한쟁의심판 청구 각하 결정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이 존속되면서 새누리당은 국회법 소관상임위원회인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안건조정위원회 회부'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법안 처리를 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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