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요, 한강!
축하해요, 한강!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05.26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

지난 17일 새벽 기다리던 낭보가 날아들었어요. 작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The egetarian)’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던 거죠.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아버지인 한승원의 말에 따르면 한강은 어려서부터 책을 보면서 자랐고, 해가 저문 뒤에도 방 한구석에서 불도 켜놓지 않고 어둠을 응시한 채 공상을 잘했다고 합니다.

작가로서의 한승원이 보는 한강의 문체는 “섬세하고, 시적이고, 서정적이고,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우유와 달걀 등 낙농 제품을 먹는 채식주의자인 베지테리언(Vegetarian)이 아닌 저로선 한강의 작품이 궁금해지고 말았지요. 만약에 동물성 식품의 섭취뿐 아니라 동물성 원료로 만든 제품도 사용하지 않는 절대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이 소설의 제목이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요.

번역의 힘이 컸습니다. 번역(飜譯)이 반역(反逆)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장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은 번역은 매 순간 아름다움과 공포가 묘하게 섞인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라고 평했을 만큼,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의 번역은 감탄을 자아냈던 겁니다. 한강 역시 “스미스는 작품에 헌신하는 아주 문학적인 사람이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왜 한강의 작품이었나라는 물음에 대해 스미스는 “그냥 좋았다. 진실해서”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가 합쳐진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는 스미스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더군요. “번역은 시를 쓰는 일과 같다.”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적 감수성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이라도 해야겠지요. 지난 2월 열렸던 제41회 서울문학회에서 한강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비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선로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잔인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인간성의 스펙트럼에 대한 고민에서 소설을 시작했다.” “4년 6개월에 걸쳐 쓴 소설은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고 싶었다.”

한강은 작품의 주인공 영혜에 대해선 “인간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고, 결백의 가능성을 믿었던 인물이다”라고, 작품의 의도에 대해선 “인간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하고 싶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을 묘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더군요.

이미 2007년에 얼굴을 내보였던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2014년에 나온 ‘소년이 온다’와 연결해 읽어야 한다는 평론계의 시각도 가볍게 받아들여선 안 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큰 상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지만, 다가올 6월에 나온다는 신작에서 한강이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 인간의 어떤 지점, 투명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것도 무척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어둠을 응시하던 한강이 드디어 밝음 쪽으로 눈길을 주기 시작했으니까요.

/에세이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