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버무리는 여자
삶을 버무리는 여자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6.05.16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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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어둠을 뚫고 라오스에 도착했다. 여행사의 실수로 방이 하나 덜 잡혔단다. 한 팀이 딴 숙소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이드가 난감한 눈빛을 던지며 딴 호텔로 옮길 지원자를 찾았다. 그러나 서로 얼굴만 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늦은 시간이고 피곤에 절어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테니.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가 갈까?”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상황이 종료되어 빨리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녀가 가녀린 손을 들었다. “우리가 갈게요!” 가이드는 우리를 태우고 딴 곳으로 이동하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자원해 주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며. 천사라고까지 립 서비스를 했다. 그녀 덕분에 날개 달린 천사도 되어보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 그녀와 쇼핑을 했다. 점원이 우리에게 사은품으로 행운의 2불을 받아가라고 했다. 그녀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은품을 준다니 좋긴 한데, 부피가 커서 이불을 어떻게 들고 다니지?” “언니~ 이불이 아니고 2달러를 말하는 거야. 행운의 2달러” 우린 서로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언젠가 내가 감기 기운에 약을 먹자 그녀가 물었다 “무슨 약이야?” 난 장난기가 발동하여 “마약이야”했다. 그녀는 걱정 어린 눈으로 “요즘엔 그렇게 나와? 주사가 아니야?” 하는 것이다. 너무 순수한 그녀가 천연기념물 같기도 하고, 나보다 몇 수 위여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엔 정말 헷갈렸다. 난 웃으며 그녀에게 농을 던졌다.

“언니 술 먹은 다음 날은 들깨 수제비를 먹으면 안 된대!” 내 말에 그녀는 왜 그러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대답을 기다렸다. “들깨 수제비를 먹으면 술이 들깨~!”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자 그녀 왈 “그럼 먹으면 안 되겠다.” 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웃었다.

그런 그녀가, 백설기처럼 깨끗한 그녀가 좋다. 행운의 2달러를 찾고 비행기 좌석을 확인하려 티켓을 꺼내자 그녀가 좌석 번호를 물었다. 난 눈이 안 보여서 볼 수 없다고 하자 그녀가 나보고 무늬만 젊다며 내 손에서 티켓을 가져가 확인했다. 난 그녀에게 말했다. “언니~ 내 눈이 되어줘~ 난 언니의 쎈스가 되어줄게~” 또 한 번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밤새 빈 호텔을 찾느라 가이드와 이곳저곳을 누볐다. 겨우 호텔에 당도한 우리는 씻는 둥 마는 둥하고 새벽잠에 빠졌다. 다음 날 피곤한 몸을 끌고 비엔티엔에서 가장 오래된 왓씨사켓 사원의 불상들을 보러 갔다. 웅대한 크기와 세월의 이끼들로 뒤덮인 그곳을 보며 인간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어떤 사람도 어떤 민족도 가벼이 여겨지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느꼈다. 비록 지금 잘 사는 나라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선조는 저렇게 찬란한 유산을 만들지 않았던가. 한 사람의 생명의 무게는 전 인류의 무게보다 무겁다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며 뜨거운 햇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단하지?” 햇살을 담고 속살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감긴다. 그녀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녀가 없었다면 난 누구와 여행을 하며 이렇게 격 없이 맘을 나눌 수 있었을까. 커다란 의미로 내게 다가오는 그녀가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반짝 내 삶에 버무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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