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하고도 향기로운 길
화사하고도 향기로운 길
  • 김영희<청주상당도서관 팀장>
  • 승인 2016.04.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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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담론
▲ 김영희

퇴근길 도서관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확 끼쳐오는 향기가 있다. 어?! 이건 뭐지? 아침엔 못느꼈는데…. 향기를 따라 가보니 도서관 벽 아래 연보랏빛 라일락과 분홍빛 연산홍이 서로 다투어 꽃을 피우고 있다.

이맘때쯤의 대지는 눈도 즐겁지만 코가 너무 즐겁다. 특히 후각이 예민한 나로서는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흐~~읍! 하고 폐 가득히 향기를 쓸어 담자니 스르르 눈이 감기며 미소가 절로 번진다. 바로 얼마 전 다녀온 제주가 생각이 난다.

나는 제주여행을 좋아한다. 어설프게나마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오고 나니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제주를 좋아하게 됬고 여러 번 다녀왔다. 그런데 이번엔 며칠을 두고 느릿느릿 걷는 올레길 여행이다. 굳이 제주가 아니고라도 걷기여행은 처음이었다. 한발 한발씩 걷는 여행은 저 멀리 보기, 다가가 자세히 보기, 뒤돌아 되짚어 보기를 알게 해주었다. 때마침 제주는 유채꽃과 왕벚꽃, 그리고 길가의 작은 꽃들로 꽃 범벅이었다.

첫 코스로 섬 안의 섬 우도를 걸었다. 11.3㎞로 네다섯시간이 걸린다고 소개되어 있는 길이다. 시작은 검멀레해안이다. 이 해안은 검고 고운 모래가 가득하다. 그래서 검멀레라고 한단다. 우도는 검멀레, 돌칸이처럼 이름부터가 듣고도 이해할 수 없으니 말 안통하는 외국같다. 검멀레에서 우도봉으로 조금 오르니 발아래로 바다에 떠있는 우도의 전경이 보인다. 검푸른빛 바다와 돌담 밭과 그 안에 노란유채꽃, 초록의 보리, 파랑 주황색 지붕의 집들이 이국적이다. 그냥 아무 곳을 아무렇게나 찍어도 엽서가 된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을 애써 뒤로하고 다시 걷는다. 새로 보이는 풍경 모두가 아까 본 풍경 못지않다. 지금 여기 있으면서도 다음에 꼭 다시 오리라 기약을 하게 된다. 들꽃과 유채꽃에 눈이 지칠만하니 산호조각으로 이루어진 하얀해변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홍조단괴해변. 그 바다색은 내가 여태 알았던 바다색이 아니었다. 하얀 산호모래 위에 부드러운 하늘을 닮은 에메랄드빛 바다다. 이 바다는 여기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스러워 보이게 한다. 햇볕을 받아 따뜻해진 산호백사장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렇게 오길 너무 잘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대견해하고 있는데 아는 얼굴이 보인다. 어제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던 아가씨다. 주말에 혼자 여행왔다는 예쁜 서울아가씨다. 내가 저 나이라면 혼자 여행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도 혼자는 못하겠다. 혼자라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고 젊음을 누리고 있는 여유에 응원의 마음을 보내본다.

일상으로 돌아와 여행의 사진들을 돌려보았다. 요즘 사진이란 핸드폰으로 찍고 핸드폰으로 다시 보고 마는 때가 허다하다.

작가 조정래씨는 사진여행집 ‘길’을 엮어내면서 인생이란 추억만들기라고 이야기한다. 그 책에서는 작가의 그간의 사진과 설명을 적었다. 그 설명은 추억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작업이라고 하였다. 그 책을 보면서 그럼 나도 한 번 해보리라 한다. 느리더라도 이번 제주여행을 더불어 지난날의 일들을, 앞으로의 일들을 사진집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참으로 화사하고 향기로운 이 봄을 기억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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