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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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하던 날
정 상 옥 <수필가>

온 집안이 양념냄새로 가득 찼다.

결혼 십 수년 동안 친정에 의지하여 김장을 해결하던 주변머리 없던 내가 서너 해째 직접 김치를 담그고 있다.

집집마다 손수 가꾼 야채와 양념으로 그 집의 안주인 손에 의해 각각 고유의 맛을 내던 김장은 먹을거리가 변변찮던 시골에서는 겨우내 겨울양식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옛날에 비하면 요즘에 담그는 김장의 양은 겨울양식이라 부르기도 송구하다.

서구문명의 토착화로 사람들의 입맛이 인스턴트식품에 길들려진 이유도 있지만, 상점에 가보면 철에 관계없이 갖가지의 반찬과 김치가 원하는 양만큼 포장되어 있다. 그것을 전화 한 통화로 원하는 시간에 배달하여 밥상에 즉시 올릴 수 있기에 시간적, 경제적, 육체적 노동에 절감을 안겨주는 효율적인 방법을 바쁜 현대생활에서 주부들이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두어 가지 종류의 김치를 담아 놓은 몇 개의 통을 바라보니 겨울이면 집안 한쪽에서 나란히 묻힌 김장독 위에 소복이 쌓이던 눈이 시리도록 하얗던 어릴 적이 떠오른다. 지금의 도시생활에서는 인공적으로 겨우내 같은 맛을 내는 김치전용 냉장고에 보관하지만 옛 시절엔 독에 담은 김치를 땅에 묻지 않았던가. 땅속의 자연적 온도와 바람과 햇살을 적당히 받으며 발효된 그 절묘한 김치 맛은 외국의 어떤 요리에도 비교될 수 없다. 볏짚으로 움막을 치고 그 속에다 나란히 묻은 김칫독을 틈만 나면 닦으시던 어머니의 정성은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였으리라.

이렇듯 한국 사람들의 겨울 식생활에서 큰 몫을 차지하던 김장이 점점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이 중년의 나이에 들고보니 안타까워진다. 더구나 외국산 김치가 수입되어 국산으로 둔갑하는 실정이니 손수 담가보지 않는 우리의 후손 세대에 가면 어느 것이 우리 김치의 원조인가 가려낼 혜안이 뜨여나 질까.

한국의 맛을 지키고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통을 이어주는 것 또한 재물을 남기는 것에 버금가는 큰 유산이 아닌가 싶다. 서구적 입맛에 밀리어 식탁에서 도태되어 가는 현실을 바라만 보고 묵인할 것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인 안목과 관심을 갖고 지켜 나가야함은 우리의 사명중 하나이다. 그것은 한집안의 식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 주부들이 지켜야할 몫이기도 하다.

김장을 하는 동안 지독히도 추웠던 그 옛날 내 고향집에서의 김장하던날을 떠올리며 알싸하고 시원하던 어머니의 손맛을 찾아내려고 나름대로는 애를 써 보았다. 무를 넓적하게 썰고 찹쌀 죽에 불그레한 고춧물을 들여 담아놓은 물김치는 겨우내 땅속에서 발효되어 봄철까지 식구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별다른 특별 양념을 첨가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머니의 손길만 타면 색다른 맛으로 만들어졌다.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햅쌀밥에 별식으로 삶아 놓은 돼지고기를 노란 배춧잎에 올려 벌건 속양념을 넣어 돌돌 말아 한입 가득 넣어 주셨던 어머니의 손이 절절이 그리워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툭툭 불거지고 터진 손마디에 양념의 매운맛으로 아리고 쓰렸지만, 제비새끼처럼 쪼그리고 앉아 입 벌리고 받아먹는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만큼의 행복을 느끼셨을까. 살아오신 이력으로 한집안에 맛을 이어주시던 내 어머니의 독특하던 갖가지의 김치는 이제 기억 속에서만 그리워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김장을 하면서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듯 마음이 뿌듯했지만 내내 어머니의 빈자리가 시리고 허허로워 자꾸만 손등으로 눈물만 찍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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