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대학에 목을 맬텐가
언제까지 대학에 목을 맬텐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03.13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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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지금 영동군에서는 지역사회와 영동대학교가 대학의 교명 변경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대학은 부실대학 오명을 벗고 위기적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미지 쇄신을 위한 개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주민들은 대학이 지역을 연고로 한 교명을 포기한 것은 아산시에 개교한 제 2캠퍼스로 거점을 옮겨가겠다는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예년 이맘때 같았으면 대학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나부꼈겠지만 올해는 대학을 성토하는 현수막들로 도배돼있다.

양자간 입장의 충돌은 감정의 충돌로 변질되고 있다. 지역은 대학을 배신자로 매도하고 대학은 정치인들이 주민을 선동하고 있다며 역공하고 있다. 엊그제는 대학에 들어가 학생들로부터 반대 서명을 받던 군 공무원이 교직원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는 지방의 척박한 환경이 고스란히 농축돼 있다는 점에서 보는 이들에게 서글픔을 준다. 문패만 바꾸겠다는 대학의 하소연에 전쟁이라도 치를 태세로 들고일어나는 과민의 이면에는 지방 소도시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이 투영돼 있다. 경제·사회·정칟문화적 기반과 거기서 생산되는 과실이 수도권에 집중된 절대 불균형의 시대가 반영된 것이다. 이를 개선·교정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권, 정부, 정치가 오랫동안 손을 놓다보니 지방도 이제는 이런 기현상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지역에 대학 하나 존립할 수 없는 메마른 환경이 만들어진 데 대한 분노보다 살아남기 위해 이름이라도 바꾸겠다는 대학에 분개하는 모습에서 이런 의구심은 더 깊어진다. ‘자업자득’일 수도 있겠다는 자괴감까지 든다.

정책의 소외자, 시대적 약자들끼리 벌이는 이 고단한 싸움은 패자부활전도 아니다. 피차 상처를 입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도 득 될 것이 없는 소모전일 뿐이다. 숨을 고르고 냉정하게 현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어차피 교육부 인가까지 떨어진 마당이다. 영동대는 교명 변경을 강행할 것이고, 아산 캠퍼스 추가 이전이 아니더라도 자체 구조조정이나 교육부 방침에 따라 대학 정원은 줄어갈 것이다. 언제까지 대학에 목을 매야 하느냐는 뼈아픈 자문이 등장해야 할 시간이 됐다는 얘기다. 특히 지역에 책임있는 위정가들이라면 군민을 대학의 바짓단을 잡고 늘어지는 구차한 상황으로 내몬 데 대해 ‘석고대죄’해야 한다.

대학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학을 비난하기에 앞서 지역의 안일과 나태도 짚어보자는 뜻이다. 이번 사태는 이미 영동대가 아산캠퍼스에 착수한 2009년부터 예견돼 왔었다. 신입생 모집 여건이 좋은 아산에 제 2캠퍼스가 들어서면 본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7년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지역은 대안 모색에 태만했다. ‘지역을 먹여살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포장했던 장밋빛 사업과 약속들은 공염불에 그쳤다. 위정자들의 맹성을 다시금 촉구해야 하는 이유다.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고도 숱한 실패작들을 양산해온 무능한 과거를 반추하고 자신이 어떤 악역을 맡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 달라고 말이다.

그런 통렬한 자기 반성과 각성을 토대로 대학을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 동력을 만드는데 올인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에 “떠날테면 떠나라”고 말할 수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선은 구차한 줄다리기부터 끝내자. 지역은 교명 변경을 수락하고 영동대는 주민들이 스스로 현수막을 철거하도록 명분을 제공하기 바란다.

‘아산캠퍼스를 위해 영동캠퍼스를 희생하지 않겠다’는 굳은 약조가 그 것이다. 영동대는 이번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고 반박하지만 합리적 보다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서울보다 큰 덩치에도 국회의원은 4분의 1명밖에 갖지 못하는 지역이나 만년 부실대 멍에에 시달리는 대학이나 존망의 위기를 앞두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를 종결하는데 있어 형식에 연연할 여유도 필요도 없는 절박한 처지들인 것이다. 상호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기를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갈등으로 허비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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