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알박기’ 천안 시민의 종
‘원도심 알박기’ 천안 시민의 종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6.02.22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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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조한필 부국장(내포)

옛 천안 시청사(현 동남구청)에 세운 천안 시민의 종이 다른 곳으로 옮겨질 전망이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이곳에 40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을 지으려 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종이 원도심 재개발(재생)에 장애요소가 될 건 10여년 전 종을 세울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그런데 요즘 종 이전을 둘러싸고 우려가 크다. 첫째는 이전비(4억원)로 인한 예산낭비다. 둘째는 ‘전임시장 업적 지우기’로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둘 모두 종이 세워질 당시 주민 반응과 지금의 처참한 원도심 실태를 생각한다면 나올 수 없는 얘기다.

이 종은 전임 시장이 재선에 도전하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졌다. 명분은 인구 50만명 돌파를 기념하고 시민 화합과 안녕을 기원한다는 것. 종 주조비만 7억원에 종각 건설비 7억원 등 총 17억원이 들었다. 당시 이 종 설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2005년 9월 23일 필자가 쓴 기사다. 시청사가 신도심 불당동으로 이전한 지 일주일 정도될 때였다. 종각 지으려 옛 시청사 별관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주민 심정은 착잡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의 이모씨(61)는 ‘상권은 죽어가는데 시청을 옮기자마자 뭐가 급한지 종각부터 세운다’며 혀를 찼다. 그는 ‘구 청사 일대에 문화산업클러스터 조성이 추진되는 가운데 덜컥 종부터 설치하면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종각(종)이 향후 구 청사 활용 계획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내년 시장선거를 염두에 두고 연말 대대적인 제야 타종행사를 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당시 상인들은 더 원색적인 말까지 털어놨다. “시청사 옮기는 건 수년 전 확정됐는데 그동안 아무런 대책도 못 세우더니 이사 가면서 웬 종부터 세운단 말이냐. 무슨 종칠일 있냐.” ‘종(鐘)칠 일 있냐’는 말은 모든 일이 허사로 끝났다는 뜻의 비속어 ‘종(終) 친다’를 빗댄 것이었다.

불길한 예언은 꼭 맞는다고 했던가. 종이 설치된 후 원도심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재개발 사업자는 번번이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나가떨어졌다. 그동안 전임시장은 재선(2006년), 3선(2010년)으로 승승장구했다. 원도심 활성화는 매번 말만 번드레했지 진정성, 현실성 없는 계획으로 원점을 맴돌았다.

그래도 매해 마지막 날, 시장은 종을 쳤다. 몇 시간짜리 행사 열려고 혈세 수천만원씩을 썼다. 선거로 뽑히는 시장에겐 제야 타종식은 유권자에게 얼굴을 내밀 또 하나의 기회다. 일반 시민은 찾기 어렵고 관변단체 사람들만 모여 추위에 벌벌 떨었다.

2005년 시청사 이전 당시 시는 “원도심 재개발을 곧 하겠다”고 주민을 달래고선 종부터 설치해 되레 재개발 장애물을 만들고 떠났다. 시가 나서서 알박기한 셈이다. 주민은 어이가 없었다. 꼭 종 때문만은 아니지만 원도심 주민은 그동안 죽을둥 말둥 버텨왔다. 이런 상황에서 시가 재개발 사업자에게 “종 안 옮기고 재개발할 수 있는 계획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나.

이 종은 늦어진 원도심 재개발(재생)에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재생사업이 성공했다면 일찌감치 다른 데로 사라졌을 종이다.

원도심은 도시의 역사다. 원도심 재생과 주민 고통을 생각한다면 종 이전비는 큰돈이 아니다. 종각을 피해가며 아등바등 재개발 설계도를 그리다가 ‘재개발 대업’을 망칠 순 없다. 그리고 전임 시장에게도 이 종은 결코 업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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