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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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6.02.0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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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가게에 출근하면 문 앞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명함크기의 작은 광고지다.

바로 대출, 단박 대출, 신용불량자도 100% 대출 거의 비슷비슷한 문구로 누구라도 무담보 무보증 대출을 해 주겠다고 유혹한다. 광고 내용대로라면 자금 때문에 허덕거리는 영세자영업자들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요즘 대출 광고지 사이에 발견되는 색다른 명함이 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출마를 하려는 고귀한 분들의 알리기 명함이다.

가게에도 전화가 심심치 않게 오고 있다.

우리 집은 햇수로 25년째 장사로, 지금은 십 년째 배달로 온 가족이 먹고 살아가는 자영업자다. 주문이 밀리는 시간대에는 일분일초가 아깝다.

그 아까운 시간에 버젓이 전화를 걸어 총선을 위해 여론을 수렴하겠단다. 미처 듣기도 전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하루에도 수십 장씩 뿌려대는 사채광고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은 지금은 사채광고지가 아무리 유혹의 손짓을 해도 눈도 까닥하지 않지만 어려울 때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한번은 어렵게 통화를 했더니 본인들 업체는 매스컴에서 떠드는 무서운 사채업자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대부업체라며 믿고 한 번만 써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 한 번만 믿어달라는 소리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여론 수렴하겠다며 걸려오는 전화만큼이나 신뢰가 가지 않았다.

지금도 분명 어딘가에서 자금에 쪼들리는 영세자영업자는 예전의 나처럼 전화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만 버티면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다는 헛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가게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왜 그곳이 늪인 줄 모르겠는가.

알면서도 달리 융통할 때가 없으니 혹시나 해서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예전의 나처럼 부질없이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리석다 할 테지만 늪 속으로 밀어 넣는 사채전단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것이 그네들의 암울한 현실이다.

명함을 두 장 나란히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한 장은 ‘누구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밀까지 보장하고 돈을 빌려주겠다’며 유혹하고, 한 장은 환하게 웃으며 ‘이번에는 나를 꼭 찍어주세요’라며 유혹하고 있다.

무조건 빌려주겠다는 대부업자나 무조건 믿어 달라는 고귀한 분들이라고 왜 할 말이 없겠는가. 어쩌면 우리네보다 더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늪인 줄 뻔히 알면서 혹시나 해서 그들을 믿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 이번에는 혹시나 그들을 한 번만 더 믿어보려 투표를 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이 시대의 배경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있어 당신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는 거저 돈놀이하는 양,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대변인양 제발 명함 광고 뿌려대지들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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