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다는 건
함께 걷는다는 건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6.01.0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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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상당산성을 걸으며 새해를 맞는다.

작은 보폭 느린 걸음으로 숨소리도 낮추고 고요히 걸어본다. 바람결에 솔내음이 살풋 묻어온다. 성 둘레 길엔 야무지게 꼬투리를 다문 씨앗주머니들이 마른 꽃으로 피어 햇살에 반짝인다.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니 작은 울림으로 대답한다. 씨앗들의 소곤거림이다. 귀를 여니 숲 속에 숨어 있던 소리들이 솔솔 풀려나온다. 마른 잎 부비는 소리도 새소리도 누군가 질척한 흙길을 올라오는 소리도. 바쁘다는 핑계로 참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다.

미호문 문루에 서니 연무가 끼어 푸른 빛 살풋 감도는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세기 넘는 나의 삶이 그 풍경 안에 녹아있다고 생각하니 공연히 가슴 뭉클하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유년시절부터 웃음과 눈물이 수없이 교차해온 시간, 예기치 않는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남은 시간 또한 저 풍경 안에서 갈무리될 터이다.

얼마 전 누군가 물었다.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냐고. 오염되지 않은 환경과 사람들을 찾아 그는 몇 나라를 리스트에 올려놓고 이민을 저울질 중이라고 했다. 그가 염두에 둔 나라 중 유일하게 스위스만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저 웃었던가. 성벽을 따라 걸으며 문득 그 말이 떠올라 ‘청주를 떠나 산다면?’이란 물음을 내게 던져본다. 글쎄. 가끔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낯선 도시에서 사계절 살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있지만 이곳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던 듯하다. 워낙 변화를 두려워하고 낯선 것에 쉽게 스며들지 못하는 성품 탓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이 도시가 좋다.

이 도시에는 많은 기억이 담겨 있다. 이제는 들을 수 없지만 내 나이 때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유행가 한 구절이 여전히 환청처럼 바람으로 흐르고, 잠 못 이루며 또박또박 편지를 쓰던 어린 날의 맑고 투명했던 사랑과 기다림이 있고, 동동걸음으로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의 칭얼거림도, 젊은 날 한때 목마르게 자유를 부르던 시간도 푸르게 살아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사색에 잠긴 시간. 남편이 옆에서 물병을 건넨다. 내 마음 안에 이는 잔물결을 그도 읽은 걸까.

평소엔 느긋한 편인데도 산에만 가면 날다람쥐처럼 숲길로 저만 치 달아나버리던 그가 오늘따라 얌전하다. 재촉도 없다. 그저 느긋하게 내 걸음에 맞춰 간격을 유지하고 동행을 한다.

피식 웃음이 났다. 오랜 이 도시의 기억엔 그와 함께 그린 그림도 절반이구나 새삼 지나간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모자 아래 귀밑머리 희끗희끗해지기까지 큰 탈 없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게 별건가. 이렇게 보폭을 맞춰 함께 걸어가는 게 인생이지 싶다. 예전에는 내 속도에 맞춰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했다면 올해부턴 섭섭해하기 전에 먼저 그 속도로 걸어봐야지 생각한다.

오후 햇살이 점점 따스해진다. 새해에는 좀 더 넉넉한 품을 가진 사람으로 주변을 보듬고 살아야겠구나 마음 속 다짐을 한다. 구석지고 소외된 마음으로 온화하게 스며드는 햇살 같은 사람이 되어 소박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이 도시와 함께 나누고 싶다. 오랜만에 나란히 걷는 길.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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